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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밤에 피는 꽃, -1

"너 방울이라고 그랬지?"

"............"

"이리 가까이 와서 앉아 봐."

"............"

"난 사실.....
글 쓰는 사람이야........
뭐 별로 유명하진 않지만...... "

"............"

"이리 오라니까.....
그냥 우리 이야기나 나누면서 밤을 보내자.
난 너 같은 애들의 아픈 이야기 듣고, 내 속에 있는 소리 들려 주고... 그러는게 좋아.
자! 어서....."

"............."

"왜 그렇게 빤히 쳐다 보니.............?"

"아자씨!"

"응?.... 왜?"

"좆 까는 소리 그만 하구, 똘똘이 목욕 시키러 왔음 빨리 바지나 후딱 벗어!
무슨 귀신 씨나락까는 소리 하구 자빠졌어?"

"어...... 어라.....? 너....?"

"아자씨 나랑 씹할라구 여기 들어 온 거 아냐?
뭔 글 쓰고... 밤새 마주 보구 이야기하구 쌩 지랄 떨구 있어?"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어때? 아자씨. 내가 입으로 뿅가게 서비스 해 줄께 이만원 더 줄래?"

"..............."

"으이구...... 되게 쪼잔한 아자씨네.
돈 이만원에 세상 끝날 것처럼 고민하긴...... 
곤 둬! 곤 둬! 그냥 낸 만큼 기본만 후딱 하구 가. 얼릉 바지 벗어."

  좀 전까지 고상한 표정을 지으며 잰 척하던 티가 순식간에 싹 가신 작은 체구의 사내는 꽤나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히고 부스럭거리며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폼 잡던 것에 비해 실은 상당히 소심한 성격인 듯 했다. 사내의 다리는 그의 언행 만큼이나 왜소해서 추운 겨울에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가 곧바로 연상 되었다. 여곳에서 방울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인혜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려 가소롭다는 미소를 띠고 사내가 탈피하는 꼴을 찬찬히 쳐다 보았다. 사내를 많이 접하다보니 대강 언행만 보아도 그가 어떤 타입의 남자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그런 고상한 말을 하려고얼마나 잔 머리를 굴렸을까 생각해보니 그녀로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팬티를 벗은 사내는 황급히 이불 속으로 들어 갔다. 괜히 폼 잡다가 챙피를 당한지라 겸연쩍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괜시리 웃음이 튀어나와 인혜는 절로 픽 웃고 말았다. 사내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인혜가 비양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을 알아 챈 사내는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얼른 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인혜의 입가에 밴 미소가 멈추지 않는다.

"아자씨. 괜찮아. 고 정도에 뭘 그렇게 쪽 팔려 해?
나인 좀 된 양반이 꼴 같잖게 되게 순진한 척 하네. 킥킥......."

  짧은 원피스 자락을 치켜 올리고 인혜는 팬티를 한번에 주욱 끌어 내렸다. 그 다음엔 손바닥 크기의 앙증맞은 작은 팬티를 꼭꼭 뭉쳐서 사내에게 집어 던지자 팬티는 사내의 머리에 맞고 이불 자락에 떨어졌다. 인혜의 당찬 행동에 사내는 더욱 당황스러워 전전긍긍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 키득거리며 인혜는 경대 설합에서 콘돔을 꺼내 들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천장의 형광등에서부터 길게 늘어 내려진 줄을 잡아 당기자 창 하나 없는 두평 남짓한 방에 급한 어둠이 밀려 왔다. 익숙한 손으로 침대 조명을 찾아 켜자 곧 방안에는 은은한 붉은 빛이 너울지기 시작한다. 이불을 들추고 사내의 옆으로 몸을 들이밀며 인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자씨. 여기선 그런 개소리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신나게 한 코 뜨면 되는 걸 그따우 허튼 소리 해서 분위길 엿같이 만드는거야?"

  사내의 위축된 남성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쪼물락거리며 일어 선다. 돌돌 말린 콘돔에 입김을 한번 후 불어 팽창 시킨 뒤 인혜는 사내의 물건에 씌워 주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동작에 사내는 감정이 좀 풀린 듯 부드러운 손길이 예민한 귀두를 문지르자 흠칫 놀라며 몸을 떠는 것 이었다. 인혜는 이젠 아예 사내의 귀에 입을 바짝 붙인 채 코 먹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자씨.... 뽀뽀는 절대 하면 안돼! 뽀뽀하면 죽을 줄 알아!
또 손가락 넣어두 안돼!
그리구 젖 먹거나 아래에 입 대면 목욕비 따로 줘야 해. 알았지?"

  우선 냉정하게 할 계산을 다 따지고나서, 원피스 자락을 배꼽까지 끌어 올리고 다리를 활짝 벌려 하체를 개방한 뒤 사내를 끌어 당겼다. 숨을 몰아 쉬던 사내는 못 이기는 체 인혜의 손에 끌려 천천히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탓다. 아랫 배에 닿는 사내의 물건이 사뭇 팽팽하게 곤두 서 있음을 느낀 인혜의 입가에 짧은 웃음이 한번 더 스쳐 지나갔다.

"방울이 오늘 시작이 빠르네. 아직 일곱 시도 안됐는데 벌써 개시했어?"

  찜통에 새 호빵을 넣던 황씨가 막 쪽문으로 나오는 인혜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인혜 뒤에 숨듯이 따라 나오는 왜소한 체구의 사내를 본 황씨의 얼굴에 비양거리는 듯한 표정이 잠깐 흘러갔다. '예라이! 짜식아! 이 초 저녁부터.... 여자에 환장한 놈이구나.......'
사내는 흘깃 황씨를 보고는 황씨의 속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갔다. 인혜의 명랑한 음성이 사내의 뒤를 쫓았다.

"아자씨! 또 와야 돼! 담에 더 잘해 줄께."

  급히 큰 길까지 나간 사내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인혜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봉림 극장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금새 사람들 속에 묻혀 버렸다.
황씨가 쿡하고 웃었다. 

"허허.... 저녁도 먹기 전에 여자 찾는 놈두 있네 그려."

  인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통에 손을 가져 대었다. 손 끝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촉이 좋았다. 황씨는 찜통에서 호빵을 하나 꺼내 인혜에게 건네 주었다.

"헤에.... 아자씨 나 지금 돈 안가지구 왔는데.........."

  그러면서도 인혜는 스스럼없이 받더니 반으로 딱 쪼갰다. 팥 덩어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것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588번지 11통에서 30년 째 골목가게를 운영하는 50대 후반의 황씨는 이 골목의 역사를 빠짐없이 알고 있는 산 증인 이었다. 588을 지나간 수 천명의 여자들이 그의 기억 속에 살아 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네들과 나누어 온 정 때문에 큰 길 쪽으로 수퍼마켓이 몇개 생겼어도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고 살 수 있었다.

"후우.... 요샌 정말 놈씨들이 안 와요.
그 놈의 청소년 보호니, 단속이니 해서 몇 번 뒤 흔들어 놓으니 아랫 쪽은 완전히 거미줄 치고 있다니까요."

  인혜의 볼멘 소리를 들으며 황씨는 빙그레 웃었다.

"방울이 네가 그런 소리 하면 다른 애들은 어떡하니? 넌 그래두 꾸준하잖아?"

"아유. 모르는 소리 말아요.
요샌 하루에 세 놈 잡기도 힘들어요. 긴 밤 잡을라면 얼마나 실갱이를 해야 하는데요.
겨우 하나 잡아도 빠꿈이들 뿐이라 무지하게 볶아대서 밤새 얼마나 힘이 드는데요.
좀 전에 놈씨 같은 호구라면 편해서 특별히 한번 더 해 주고 싶은 기분이라니까요.
키킥........"

  황씨의 가게 옆 집의 파란 쪽문이 열리더니 회색 털코트를 입은 약간 통통한 여자가 나왔다.

"경자 언니. 이제 나오는 거유? 난 벌써 한 코 뛰었수."

  인혜의 인사를 받고 경자는 실쭉한 표정을 지었다.

"좋것다. 이 년아. 몸 많이 팔아서........"

  경자는 올 해가 지나면 설흔 살이 되는 588에선 이미 황혼길에 접어든 아가씨로 같은 포주인 돼지 엄마 밑에서 인혜와 한 솥밥을 먹고 있었다. 돼지 엄마가 데리고 있는 9 명 아가씨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큰 언니로, 인혜와는 꽤 친했다.

"근데 어디 가는거유? 코트까지 걸치구."

"너야 젊구 얼굴이 받쳐 주니 인기가 좋아 덜렁 몸 하나 갖구두 다 되지만, 난 이제 한물 갔으니 쳐 바르기라두 해야 먹구 살거 아냐?"

"쿠쿠.... 바른다구 될 것 같아? 언닌 이제 은퇴하구 내 뒤나 돌봐 줘요."

"요런 쌍년 보게나.
마빡에 피도 안마른게 588 끌려 와서 징징 짜던게 엊그젠데, 너 참 많이 컷다.
날 놀릴 정도가 되구.........
야! 너두 앞으로 오 년만 지나 봐. 오늘 생각 하면서 눈물 철철 흘릴 날이 올거다."

  심각한 표정으로 툴툴거리는 경자의 소리에 찔끔한 듯 인혜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딴 소리를 하였다.

"음.... 언니, 잠깐만 기다려라. 나두 같이 가자. 그러고보니 나두 찍어 둔게 있는데 오늘 사버려야겠어."

인혜는 경자의 대답도 안 듣고 경자가 나온 파란 쪽문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득 생각난 듯 뒤를 돌아 황씨를 보며 한마디 했다.

"아자씨 빵 잘 먹었어요.
그 동안 공짜로 먹은게 꽤 될텐데, 낮에 한번 내 방으로 와요. 한 방에 갚아 줄께. 키키키......."

"이 눔! 뭔 소리를 하는거여? 마누라가 알면 난 그날로 죽는다."

  황씨가 짐짓 표정을 일그리며 야단쳤다. 인혜는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했다.

"하긴..... 아줌마한텐 내가 상대가 안되지. 체중 차이만 두 배가 넘는데... 아자씨 취소할께요. 아자씨랑 같이 죽기엔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해요."

  인혜가 통통 거리며 사라지자 황씨는 경자를 보며 난처했다는 듯 슬쩍 웃었다. 마주 웃으면서 경자는 찜통을 열고 호빵을 하나 꺼냈다. 인혜가 먹던 것처럼 두 손에 쥐고 호호 불면서 금새 뚝딱 다 먹어치우는 것 이었다.

"아저씨 난 몸으로 못 때우니 그냥 돈 주고 먹을께요."

  경자는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황씨에게 건넸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황씨는 돈을 거절하였다.

"방울이한텐 안 받고, 경자한텐 받으면 되겠냐?
오늘은 그냥 먹고, 담에는 돈 내라.
음.... 그리고 오늘 공짜로 준다고 소문 내지 말고........"

  경자는 돈을 받고나서 인혜가 했던 것처럼 찜통에 손을 올렸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방울이 쟨 팔랑 거리는게 꼭 나비 같지 않아요?"

  황씨는 마른 수건으로 진열된 과자 봉지 위의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애들이 여길 지나갔지만, 방울이 같이 노상 살랑거리는 애는 없었던 것 같아요."

"..................."

"뭐 여기서 몸 파는 년 중에 사연 없구, 안 불쌍한 년이 어디 있겠냐만서두 방울이가 처음 여기 왔을 땐 정말 안쓰러웠어요......... 그 핏덩이 어린 애를......."

"................."

"저 년... 밥두 안 먹고 꼬박 석 달을 울어 제끼는데 정말 다들 질렸죠. 후후............
오죽하면 돼지 엄마가 섬으로 그냥 되 팔려구 했을 정도라니까요.
지금이야 젤 잘 나가는 애지만............"

  경자의 이야기를 듣는 황씨에게도 그 때의 일이 떠 올랐다. 큰 빚덩이를 안고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588로 끌려 온 16 살 시골 소녀 인혜는 11통의 사람들에겐 지금까지도 꽤나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우선 밤마다 들리는 인혜의 쥐어짜는 서글픈 울음에 11통 티상 골목에서 그 당시 잠을 제대로 잔 사람이 없었다. 독한 애들도 보통 두어 달 지나면 반복되는 회유와 공갈에 체념하고 아스팔트에 껌이 녹아 흐믈거리며 형체를 잃듯 588의 한 부속품이 되는데, 인혜는 무려 반 년 가까운 시간을 악착같이 버텼다.

  억지로 손님을 들여 보내도 악마구리처럼 발광하며 거부하다 결국 허벌나게 두들겨 맞고서야 겨우 손님 받고, 며칠 순해져서 밖으로 내 돌리면 곧 바로 도망치다 열 걸음도 못가서 둥기인 종도에게 잡혀 작신나게 얻어 터져 눈탱이가 밤탱이로 되는 날이 지겹게계속 되었다. 인혜가 588을 탈출하는 것을 포기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반 년 이었다.

  그 뒤, 손님 거부를 안하는 대신 매일 소주 한 병씩 까며 술에 절은 반 년을 더 보내고 나서야 인혜는 비로서 588의 쌕푼이 되었다. 주변 사람과 조금씩 말도 하고, 우스운 일이 있으면 웃을 수 있는 감정 표현을 하기까지 그리고 또 반 년의 세월을 보내는- 다른 여자보다 엄청난 시간을 잡아 먹고나서야 마침내 이 티상 골목에서 슬픈 꽃 망울을 터트리게 된 것 이었다.

  황씨는 단발 머리의 소녀가 겁 먹은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구석에 패대기 쳐진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래두 방울이가 지금 이 골목에서 벌이가 제일 좋잖아?
쟤가 보긴 순해도 억척스런 데가 있어서 언젠간 여길 벗어날지도 모르지.
그 왜? 장미라는 애처럼......."

  혼잣말 하는 황씨의 중얼거림을 들은 경자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는다.

"어디요? 택도 없어요. 방울이 빚이 왠만해야죠.
그렇게 지랄로 벌어두 아즉 반도 못  갚았을 걸요?
거기다 매달 시골의 여 동생한테 돈두 보내는 것 같구......... "

  황씨는 끌끌거리며 혀를 찻다. 경자는 황씨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찜통을 열더니 새 빵을 두 개나 꺼내었다. 그리고 아까의 천 원을 다시 내밀자 이번에는 황씨도 거절하지 않고 돈을 거슬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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