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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아들의 고백(3)

집으로 돌아 와 엄마와 일종의 속죄 의식을 치룬 후 나는 정말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우선 재수학원에 등록 해 생활의 궤도를 잡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져 잡으니 학습 능률도 무척 좋아 졌습니다.

더욱 좋아진 것은 엄마와의 사이가 다시 순수한 모자간으로 복원되며 그전보다 훨씬 다정해 졌다는 점입니다. 가정은 당연히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사실 모자만 단들이 사는 우리집으로서는 엄마와 내가 서로 위하고 신뢰한다면 다를 문제는 하나도 걸릴 것이 없는 그야말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입니다.

나는 학원에서 돌아오면 일단 점포로 가서 엄마와 마주 앉았습니다. 엄마는 "뭐 좀 마실래?" "공부는 잘 되던?" 하고 말을 걸고 나도 그날 있었던 일이나 시시한 농담이라도 늘어 놓습니다.

의식적인 점도 있지만 아무리 다정한 모자간이라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인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습을 하다가도 머리를 식히고 싶으면 나는 점포로 나왔습니다. 밤이 되면 판매원 아줌마가 퇴근하고 엄마 혼자 지키는데 내가  나가면 엄마는 반색을 하고 또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손님이 오면 내가 먼저 일어나 물건을 집어 주기도 합니다.

"나 혼자 다 해오던 일이야. 우리 귀한 아들을 구멍가게 장사꾼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

엄마는 때로 이렇게 말하며 나를 제지하지만 흐뭇해 하는 표정은 역력합니다. 우리 점포는 자정쯤 문을 닫는데 그 시각이면 나도 나와서 함께 정리를 도왔습니다.

그 전 같으면 어림 없는 일입니다. 나는 점포는 물론 집안일에도 거의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사실 할 필요도 없었죠. 모든 것을 엄마가 알아서 다 척척 해 주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엄마와 단둘이만 살며 엄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받아 왔던 타성이 굳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한번 가출을 하며 바깥세상을 체험하면서 이렇게 의식과 행동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 비록 엄마라지만 내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도 새롭게 느껴 졌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정은 그 전보다 더욱 활기를 찾고 모자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 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과는 정말 딴 판입니다. 특히 내가 대학 입시에 실패한 이후에는 거의 하루 종일 나는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엄마는 혹 내 기분을 거스를까봐 말도 잘 못 걸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햇볕이 가득 비치는 홈, 스위트 홈--- 우리 가정은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것만이 진실은 아닙니다.

빛이 강하면 그 그림자도 짙어 지듯 또 다른 면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어둠 속의 변화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가끔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엄마도 나도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내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엄마나 나나 모두 가식이 늘어 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상대를 속인다거나 나쁜 짓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엄마나 나나 무대에 선 배우 같은 행동을 할 때가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만 해도 그 전에는 기분이 울적하면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엄마 앞에서 의식적으로 명랑한 표정을 만듭니다.

엄마도 비슷했습니다. 나를 보면 활짝 웃고 "잘 잤니?" "뭣 좀 더 먹을래?" "그 옷이 참 잘 어울린다" 라는등 이것저것 챙기고 말을 거는 것에 때로 오버 액션의 냄새가 풍깁니다.

차라리 그 전의 잔잔한 미소와 때로는 무심함이 훨씬 편했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처럼 엄마와 나는 행복 속에서도, 아니 그 행복을 꾸미기 위해서 항상 팽팽한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가끔 눈물 짖는 것도 훔쳐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방에서나 점포에 혼자 있을 때, 살짝 들여다 보면 멍하니 앉아 있으며 때로는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충혈된 눈을 보면 조금 전에 울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저것이 무대에서 내려 온, 배우가 아닌 진자 엄마의 얼굴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다시 가슴이 철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저지른 그 끔찍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아직도 상처는 아물지 않은거야.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무대에서 내려 온 나의 모습은 더 흉칙했습니다. 조명을 받을 때면 나는 전에 없이 엄마를 잘 돕고 다정하게 대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는 효자 모범생이었지만 어둠 속의 실제 내 모습은 더욱 일그러 지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단 한가지, 날로 커 지는 엄마를 향한 성욕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니, 이 인간 말종아? 네가 한 짓과 그 결과를 생각해 봐. 너는 두차례나 그 못된 짓을 했어도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잖니?

오히려 후회만 가득하고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 졌었니?

더구나 천사 같은 엄마한데 그토록 깊은 슬픔과 상처를 남기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냐?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면 밖에서 구해. 이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 여자 아니냐? ... 내 이성은 이렇게 스스로를 꾸짖고 해결책도 제시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창녀촌까지 찾아간 것은 바로 그 이성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재수학원에서 한 아가씨를 낚았습니다. 

학생시절에 여학생을 따로 사귀어 본 적도 없는 나는 학원에서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습니다.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내 청을 받아 주었습니다.

여학생반의 김미순이라는 그 아가씨는 전라도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다는데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무척 발랄한 인상이었습니다.

"나도 그 전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어. 우리 잘 사귀어 보자."

미순이는 커피숍에 마주 앉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낚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날 리드해 갔습니다.

그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자기 자취방에 놀러 와도 되고 외박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암시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그 정도로 헤어졌습니다.

두번째 데이트는 그녀의 제안으로 디스코 텍을 갔습니다.

나는 헤비메탈의 그 소음이나 현란한 조명이 다 마음에 안 드는데댜들춤솜씨도 영 형편 없었죠. 하지만 그녀는 춤 중독자 같았습다.

내가 "좀 쉬겠다"고 하자 그녀는 혼자 플로어에 나가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어 댔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무드와는 딴 판이었습니다. 두시간쯤 머무는 동안 그녀는 거의 대부분을 혼자 춤 추었고 나는 씁쓸한 기분이라 숧맛도 없었습니다.

디스코 텍을 나오자 그녀는 다시 "나이트 클럽을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좀 짜증스러워 져서 "오늘은 피로하니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바래다는 줘야지."

그녀의 자취방 근처에 이르자 그녀는 나를 으슥한 골목으로 이끌었고 우리는 작별의 키스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입술을 대자 말자 혀가 쑥 들어오는데 나는 질겁을 했습니다.

혼자 돌아오며 몇번씩 침을 뱉고 그것으로 그녀와는 끝이었습니다.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소위 '588'이라는 청량리역 뒤 창녀촌을 찾았습니다. 그 방면에 빠삭한 그 친구는 비용을 모두 내가 대겠다는 제안에 신이 나서 나를 인도했습니다.

당시 '588'은 방 하나를 베니어 판으로 막고 전구 하나로 양쪽을 밝히는 어설픈 구조였습니다. 내가 배당된 여자는 30대로 보이는 깨 나이먹은 여자였습니다.

"팁 좀 더 줘. 그럼 홀딱 벗고 하끈하게 해 줄께"

여자는 방에 들어서자 손바닥부터 내밀었습니다. 돈을 줬더니 여자는 정말 잽싸게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는 요 위에 누워서 나를 빨리 오라고 손짓 합니다.

"어머! 아직 서지도 않았잖아. 알았어. 금방 내가 세워 줄께."

여자는 바지 위로 내 아래를 덮썩 쥐어 보더니 막 쟈크르 내리려 합니다.

그러나 뱃살이 디룩디룩하고 질겅질겅 껌을 씹어대는 모습에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 몸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방문을 연 내 뒷덜미를 잡아 끌었습니다.

"당신, 숫총각이지? 빨리 들어 와! 나 오늘 돈 안 받아도 좋아. 나도 숫총각 맛 한번 보자."

오히려 내가 그곳을 빠져 나오는데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시돋고 실패로 끝나며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자위로 귀결되고 맙니다. 다만 방법은 좀 개선되었다고나 할까요.

엄마 방 벽에는 육군대위 계급장을 단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엄마의 화장대에는 코스모스가 가득 핀 교외에서엄마와 내가 활짝 웃는 컬러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 화장대 앞에서 엄마의 벗어 놓은 팬티를 들고 자위를 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얼굴을 보며 그 팬티로 뒷처리를 한다는 것이 스릴도 있고 팬티는 세탁기 밑에 다시 쳐박으면 깜쪽 같았습니다.

그날도 한참 그런 자제로 열중하는 중 인기척이 나기에 뒤돌아 보니 엄마였습니다.

우리는 둘 다 소스라체게 놀랐습니다. 엄마는 지금 점포에 있을 시간인데...? 엄마는 뭔가 먹을 것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었고 이미 방안에 멏걸음 들여 놓은 상태였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런 장면을 보게 되었더라도 물론 못본척 해 줬을 것입니다. 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그날은 모든 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도저히 그런 꾸밈도 불가능 했습니다.

더구나 놀라서 손을 급히 떼었어도 그 때가 막 클라이막스의 순간이라 정액이 튀어 나왔습니다. 엄마는 급히 외면을 했지만 나의 정액은 몇차례나 더 쏟아지며 화장대와 방바닥을 더럽혔습니다.

나는 완전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오히려 느릿느릿 엄마의 팬티로 그것들을 딱고 그 방을 나섰습니다.

엄마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서 있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내 감정은 최악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엄마가 "밥 먹자" 고 했을 때도 "TV 영화를 시작했다" 고 할 때에도 나는 퉁명스럽게 "싫다" 고만 말하고 방에 틀어 박혀 있었습니다. 그날은 점포 문도 엄마 혼자 닫았습니다.

나는 밤 늦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새벽 2시경 잠옷바람으로 엄마의 방을 찾은 것입니다.

엄마는 잠자리에 누워 있었지만 역시 잠은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엄마의 방믄을 두드렸을 때처럼 놀란 표정은 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윽한 눈길로 나를 맞아주는 듯 했습니다.

"이리 들어 오렴."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엄마는 이불 한쪽을 들추어 주었습니다. 내가 한 걸음 옮기려는데 "아주 불도 껐으면..."아라고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엄마와 나란히 몸을 뉘었습니다.

그 다음은 모든 일이 마치 종교의식처럼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엄마도 나도 서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나는 엄마의 옷을 벗겼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폭력도 광기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가슴이 빠르고 세차게 진동하는 것을 함께 느끼며 그래도 천천히 나는 엄마의 옷을 벗겨 나갔습니다.

잠옷 단추 하나가 잘 안 빠지자 엄마가 대신 끌러 주었습니다. 블래지어를 풀를 때는 엄마가 몸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결국 우리는 다 알몸이 되었습니다.

어둠에 눈이 익자 엄마의 긴 목덜미와 봉긋한 젖가슴의 실루엣이 마치 조각상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내 페니스는 엄마의 그 그윽한 곳, 바로 내가 태어난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번에도 역시 멏차례의 동작만에 사정을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회나 환멸 같은 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은 한껏 평화롭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자세로 언제까지나 있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엄마와 나는 그렇게 살을 섞은 채 포옹한 자세로 한동안을 보냈습니다.

내가 내려오자 역시 조용히 몸을 일으킨 엄마는 물수건으로 내 페니스를 닦아 주었습니다. 부랄 주변까지 꼼꼼하게 닦아주는 그 부드로운 손길은 섹스 자체 보다 더 황홀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 였습니다.

"오늘 나 여기서 자도 돼요?"

"그렇게 하렴."

이 말들이 오늘 밤 엄마와 내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나는 평화롭고 만족스런 중에서 다시 여운을 즐기려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 속에서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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