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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망각의사슬-9부

" 집엔 안들어 갈거냐... "
" 다시는 거기 들어가고 싶지않아... "
" 그럼 오늘도 모텔에서 잘거냐.. 옷은 어떡할거야... "
" 옷이야 한벌 사면되지..뭐.. "
"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맨날 모텔에서 지낼거냐... "
" .... "
" 그러지말고 일단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건지 결정을 내려... 너때문에 걱정되 죽겠다.. 여자가 겁도없이 혼자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니고.. "
" 그렇게 걱정되면 니네 집에서 지내면 안될까.. "
" 뭐야.. 그건 안돼... '
" 왜 안돼는데... "
" 아무리 너랑 나랑 오랜 친구라지만.. 남들이 좋게안봐.. "
" 넌 친구보다.. 남들 시선이 더 걱정되냐... "
" 그런건 아니지만.. 암튼.. 그건 안돼.. "
" 그럼 할수없지 뭐.. 오늘도 모텔로 가는수 밖에... "
" 아휴.. 야.. 넌 어떻게 잠시 의탁할 여자 친구도 없냐.. "
" 왜 없어.. 있었지.. 한명... "

수진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이자 진석은 순간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의 말 그대로였다. 수진에게 친구란 자신과 주영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은진뿐이였다. 그랬기에 수진은 이 상황에서 아무대도 갈데가 없었다. 외동딸인 수진의 부모는 수진이 결혼하던 그해에 친척들과의 나들이에서 사고로 차량이 절벽으로 떨어져 전복되는 바람에 부모를 비롯한 몇몇 일가 친척 들을 모두 잃은 수진으로선 진석 말고는 딱히 의탁할 곳이 없는것이 사실이였다.

"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정말... "
" 니가 왜 미쳐... "
" 후우.. 할수없지.. 모텔 보단 우리집으로 와라.. 어차피 하나 남은방은 서재로 쓰고 있으니까.. 당분간 거기서 지내라.. 그럼.. "
" 진짜 그래두 돼... "
" 단 조건이 있어... "
" 뭔데... "
" 우리집에서 지내는 동안 술 먹고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안돼... "
" 왜... "
" 아뭏튼 안돼.. 그건 명심해라... "
" 알았어... "

석진은 수진으로 부터 술에 취해 귀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짐 받았다. 아무리 자신과 둘도없는 친구라지만 행여 자신이 술에 취한 수진을 여자로 볼지도 모를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석진의 예방책 이였다.

" 집근처에 백화점이나 할인점 있으면 잠깐 들리자... "
" 왜... "
" 칫솔이랑... 간단한 옷가지 몇개 사야지.. "
" 알았다... "
수진의 말에 석진이 대답을 하며 차의 진행 방향을 바꿨다.
" 어서오세요.. "

여직원이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매장으로 들어서는 수진과 진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석진은 가볍게 목례로 답을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가며 옷가지를 훑어보는 수진의 곁에서 여직원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석진은 여성 의류매장의 분위기가 어색한듯 멀쓱한 표정으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 이거 어때... "
수진이 옷 하나를 집어들며 석진에게 물었다.
밝은 회색빛 계통의 브라우스와 브라우스 보다 약간 짙은 회색의 투피스 정장 이였다.
" 내가 어떻게 알어.. 니 맘에들면 그냥 사라... "
" 남편분께서 생긴거랑 달리 무뚝뚝 하신가봐요.. 요즘 그러시면 아내한테 구박 받는다는데... 그러지 마시고... 한번 봐주세요.."

매장 여직원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진석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하자 진석은 조금 당황한듯 머뭇 거리자 수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저 남자가 원래 그래요... 이걸로 싸주세요... 카드로 계산할게요.. "
" 네.. 감사 합니다... "
" 이거 좀 들고 기다려... "
" 야.. 어딜 가는데... "
쇼핑백을 건내 받으며 석진이 수진에게 물었다.
" 왜.. 같이갈래... 속옷 살껀데... "
" 어.. 아냐... 여기서 기다릴께.. "
" 그럴줄 알았다.. 기다려.. 금방올께.. "
석진이 돌아서는 수진을 바라보며 몸을 돌려 비상구 안내가 붙어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휴우... "

석진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수진에게 막상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는 했지만 석진은 그것이 잘한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진이 계속해서 모텔에서 지내는것을 계속 두고 볼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별다른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진석은 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담배 한모금을 길게 들여 마셨다.

" 비리링.. 비리링..링링... "
그때 진석의 핸드폰이 울리자 진석이 담배를 끈뒤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 여보세요.. "
" 엄마다.. "
" 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
" 모레 어떻게... 내려 올꺼냐.. "
" 모레요.. 무슨일 있어요... "
" 너도..참.. 할아버지 제사날 아니냐... "
" 아.. 그런가요.. 알았읍니다.. 내려 가겠읍니다.. "
" 토요일이니까.. 회사 일찍 끝날테니 일찍 내려와라.. 누나랑 매형도 일찍올 모양이다.. "
" 알았읍니다.. 어머니... "
석진이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접는 순간 두리번 거리는 수진의 모습이 보이자 진석이 수진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야.. 기다리랬더니.. 여기서 뭐하냐.. "
" 담배 한대폈다... "
" 찾았잖아... 가자... "
" 다 샀냐... "
" 그래.. 가자.. "
수진이 다시 진석의 손에 들렸던 쇼핑백을 빼앗듯 채어간뒤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진석도 수진을 따라 움직였다.

수진은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라도 태우를 만나서 이번일에 대한 결말을 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질질 끌어봤자 좋을게 없을듯 싶었다. 이미 벌어진 사실을 되돌릴수도 없을 것이고 수진은 어차피 태우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깨끗이 정리 하는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진은 정리된 마음과는 달리 알수없는 슬픔에 눈가를 붉혔다. 왜 자신에게 이런일이 일어나야 하는건지.. 왜 하필이면 남편의 외도 상대가 자신의 친구일수 밖에 없는지에대한 생각에 수진은 가슴이 아파왔다. 수진으로써는 사랑과 우정 모두를 어이없게도 한순간에 잃어야 했던 것이다. 그나마 진석이 없었다면 이 상황에서 수진은 자신이 더욱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진석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똑.. 똑.. 수진아 일어나... "
문을 두드리며 진석이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수진이 눈을 떴다.
지난밤 이런 저런 생각에 새벽까지 잠을 설쳤던 수진의 눈꺼풀이 쉽사리 떠지지가 않았다.
" 알..았..어... "
수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뒤 크게 기지개를 켜서 찌부둥한 몸을 풀어 보았다.

" 와.. 너 제법이다.. 결혼하면 와이프한테 사랑 받겠다... "
세수를 하고 나온 수진이 아침을 먹으라는 진석의 말에 식탁위에 놓여진 따뜻한 밥과국을 바라보며 놀란듯 말했다.
" 학교 졸업하고 자취 생활 칠년이다..이 정도는 기본이다.. "
" 그래 알았다.. 잘 먹을께... "
수진이 자리를 잡고 앉아 속이 타는듯 대접째 국을 들이키자 그런 수진을 보며 진석이 입을 열었다.
" 어떠냐.. 먹을만 하지... 만점짜리 취사병 아니냐.. "
" 군대도 안갔다 왔으면서... "
" 모야.. 남의 아픈데를... "
" 알았다.. 알았어.. 맛있다.. 됐냐... "
진석은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다 넘어져 다친 허리 때문에 군대를 면제 받았고 대학 시절부터 그런 진석을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며 진석을 가끔 놀리곤 했던 것이다. 친구 하나 잘못둬서 군대 면회도 한번 못가봤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 나 내일 집에 좀 내려가야 할것 같다.. "
진석이 운전을 하며 수진에게 말을 건냈다
" 집에... "
" 응.. 할아버님 제사래... "
" 그래.. 그럼 내려 가봐야지.. "
" 아마.. 일요일날 올거같아.. 내가 내일 아침에 열쇠 줄테니까.. 아니다 열쇠 하나 복사해서 이따 줄테니 가지고 있어라... "
" 그래... "
진석의 말에 대답을 하며 수진이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진석이 집으로 내려가면 익숙치 않은 진석의 집에서 홀로 하루를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자 알수 없는 착잡함이 수진을 감싸왔다.

" 박 대리... 김 대리 그리고 미영씨.. 회의실로 좀 모이세요.. "
" 넵.... "
늘 밝은 모습의 상훈이 수진의 말에 마치 군대에서 말하는듯한 어투로 대답을 하자 수진은 그런 상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인뒤 회의실로 향했다.

" 음..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물류쪽에 회사를 만들려고 하는것 같아요.. "
" 그건 우진에서 맡고 있잖습니까... "
수진의 말에 상훈이 입을 열었다.
" 우진쪽에서 무리하게 회사를 확장하다 자금쪽에 문제가 발생한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번에 독자적인 물류 시스템을 갖추려고 하는것 같아요... "
"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는 물류 시스템을 직접 다뤄보지 못했는데... "
" 그래서 회사에선 태인이란 회사와 합작을 하려는거 같아요... "
" 그럼.. 우진의 관계와 크게 달라지는게 없자나요.. 그냥 파트너 체인지 아닌가요..
"
상훈과 수진의 대화를 듣고있던 상훈의 입사 동기인 미진이 입을 열었다.
" 뭐.. 꼬집어 말하면 그렇지만... 회사에선 일단 태인과의 합작을 통해 물류 시스템의 노하우를 취득하게 되면 우리 회사의 기획 능력을 합쳐서 독자적인 새로운 유통 회사로 탈바꿈 하려는것 같아요... "
수진이 말을 마치자 상훈이 곧이어 입을 열었다.
" 한 마디로 일정기간 밀월 관계를 하겠다는 거네요... "
" 후후.. 김 대리말이 정확한 답이겠지.. 하지만 확정된건 아니예요.. 최종 결정은 위에서 하겠지만 그전에 먼저 철저한 검토를 해보자는 거죠.. "
" 어쨌든.. 한동안 또 고생하겠네요... "
미진이 샐쯕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이자 상훈이 그런 미진을 바라보며 한마디했다.
" 넌 일도 못하면서 티는... "
" 뭐야... 김 대리.. 그런 너는... "
" 내가 어때서.. 일 잘하지.. 성격좋치... 이만하면 완벽한 직장인의 표본이지.. 안그래요.. 과장님... "
상훈이 응원을 청하는듯한 표정으로 수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글쎄.. 잘 모르겠는데... "
" 거봐.. 과장님도 인정 안하시잖아.... "
수진의 말에 미진이 힘을 얻은듯 상훈을 노려보며 말하자 상훈이 그대까지 아무말이 없던 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 미영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
" 저는.... "
미영이 머뭇거리며 말을하려 하자 미진이 그 말을 가로 막으며 입을 열었다.
"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미영씨 눈에야 김 대리는 최고의 남자지... "
" 무슨 소리야... "
" 누가 모를줄 알아... 두 사람 회사에서 오가는 눈빛 내가 다 눈치챘다구.. "
" 어머.. 박 대리님..... 아니예요.... "
미진의 말에 미영이 놀라며 미진의 말을 막으려했다.
" 진짜야.. 두 사람.. 그런 사이야... "
" 과..장님.... "
수진의 말에 상훈이 긴장한 목소리로 수진을 불렀다.
" 진짠가보네.. 김 대리가 말을 다 더듬게... "
" 전 확신해요.. 과장님.. "
" 그래.. 그럼 축하할 일이네... 뭐 어때.. 미영씨... 사내 커플 좋잖아... "
수진의 말에 미영이 얼굴을 붉힌체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 그나저나.. 김 대리 능력있네... 미영씨 같은 여자를 낚아채다니... "
" 과장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
" 김 대리님... "
상훈의 너스레에 미영이 당황스러운듯 상훈을 불렀다.
" 자자.. 두 사람 축하는 조금있다 하고 회의 마무리 합시다... "
" 넵.. " ... " 네.. "
상훈과 미진이 대답을 하자 수진은 그때까지 부끄러운듯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있는 미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뒤 다시 회의를 이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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