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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망각의사슬-10부

" 서류 작성해서 보낼터니 도장이나 찍어줘요... "

수진이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체 담배를 피워대는 태우에게 싸늘한 음성으로 이혼해줄것을 요구했다.

" 알았어... 원하는 대로 해줄께... "
" ..... "

수진은 태우가 자신에게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정도는 해주길 바랬지만 태우는 마치 수진의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이혼에 순순히 응해주겠노라고 대답했다.
" 그리고 집은 당신한테 넘겨줄께... "
" 고맙군요.. 위자료로 집까지 준다니... "
태우의 말에 수진이 조롱하듯 말을 건냈다.
" 다음주 안으로 모든걸 정리하도록 할께... "
" ..... "
" 그리고 내 짐은 사나흘 안에 옮길테니까.. 집에 들어가.. 난 다른데서 지낼테니까.. "
" 그럴 필요 없어요.. "
" 마땅히... 지낼곳도 없잖아... "
" 당신이 그런 걱정할 필요 없잖아요... "
" ..... "
" 그리고 그집엔 들어가기 싫으니까... 그냥 당신 짐만 빼가요.. 그 다음에 집은 내놓을테니까... "
" 그러도록하지... "
" 그럼 더할말 없는거죠... "
" 그래... "
" 먼저 일어날께요... "
" .... "
수진이 더 이상 태우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진은 운전대를 잡은 손을 살며시 떨었다.
너무도 간단했다. 한때는 남편이였던 태우를 사랑했었다. 그랬기에 수진은 진석과 주영 그리고 은진 앞에서 독신주의로 살겠노라고 선언했던 자신의 말을 뒤집으며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었지만 너무도 허망하게 자신의 가슴에 상처만을 남기며 결혼 생활은 파국의 종말을 맞아버린 것이다. 수진은 결코 두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노라며 다짐하며 파국을 맞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그렇게 조금씩 정리해가고 있었다.


" 누구세요... "
" 예.. 접니다... "
" 그래... 왔구나... "
[ 덜..컹... ]
인터폼을 통해 진석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후 곧이어 조금은 육중하게 보이는 대문이 열쇠 풀리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밀리자 석진은 대문을 밀어 젖히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 어.. 처남 오랫만이야.. "
" 매형.. 오셨어요... "
현관을 들어서는 진석에게 매형인 동우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진석에게 인사를 건내자 진석이 고개를 숙이며 동우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 왔냐... "
" 예.. 어머니... "
진석이 매형과 인사를 막 나눌쯤 진석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진석의 누나와 함께 나오며 직장 때문에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들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듯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진석을 맞았다.
" 너.. 오랫만이다.. "
" 응.. 누나... 오랫만이네... "
" 넌.. 어떻게 연락 한번없니... "
" 그런 누나는...뭐 연락한적 있나.. "
" 얘.. 윗 사람이 아랫 사람한테 안부 인사 올려야하니.. "
" 지영이는... "
누나의 말에 진석이 화제를 돌리려는듯 누나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지영의 안부를 물었다.
" 고3이... 이런데 올 시간이 어디있니... "
" 그래도 좀 데리고오지.. 못본지 꽤 됐는데.. "
" 니가 언제 우리집에 한번들려... "
진석의 누나와 진석은 열두살의 차이가 있었다.
원래는 진석의 위로 여덟살 차이가 나던 형이 있었지만 어릴적 뇌막염이란 병에 걸려세상을 뜬후 진석의 부모는 대를 이을 걱정에 늦둥이로 진석을 낳게 된것이다.

" 그러지.. 뭐.. 아버지는... "
" 응.. 방에서 작은 아버지랑 이야기 중이셔... "
진석이 누나의 말에 안방으로 걸음을 옮겨 안방문을 열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향해 인사를 했다.
" 아버지 저왔읍니다... 작은 아버지 안녕하셨어요... "
" 그래... 진석이 왔냐... 직장 생활은 어떠냐.. "
" 네.. 그런대로 할만 합니다.. "
진석이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앞에 앉으며 대답을 했다.
" 진석아... "
" 네... "
진석이 자리에 앉자 이제 칠순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진석의 아버지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진석을 불렀다.
" 너 다음주에.. 시간 좀 내거라.. "
" 다음주요... "
그때 진석의 작은 아버지가 대뜸 입을 열었다.
" 너도.. 이제 장가 가야지.. 형님 나이가 낼이면 일흔이신데.. 손주 안겨드려야지.."
" 네...... "
진석이 말끝을 흐리자 진석의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작은 아버지가 참한 신부감이 있다고하니.. 한번 만나보거라.. "
" 저기.. 아버지... "
" 잔말 말고.. 애비 시키는데로 해라... 알았냐... "
" .. 알겠읍니다.. "
아버지의 낮지만 단호한듯한 말에 진석이 할수 없다는 대답을 했다.


" 오빠.... "
" 응.. 미정이도 왔었구나... "
진석이 선을 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당혹감을 느끼며 방을 나서자 이층에서 사촌 동생인 미정이 내려오며 진석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잘 지냈어.. "
" 그래.. 근데.. 넌 시집 안가냐... "
" 남 걱정말고 오빠나 장가가셔... 난 시집 안갈꺼니까... "
진석과 두 살 터울인 미정이 진석을 향해 입을 내밀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했다. 미정은 대학 시절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등진뒤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며 홀로 남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혼자 살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때문인지 이미 혼기를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다.
" 내일 점심 먹고 갈거냐... "
" 저기... 아무래도 제사 끝나면 바로 올라가야 할것 같아요.. "
" 아니.. 그 늦은 시간에 다시 올라간단 말이냐... 몇주만에 집에 와놓고서.. "
진석의 어머니가 진석이 제사를 마치고 그냥 올라간다는 소리에 서운한듯 진석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표출했다.
" 네... 내일 회사에 나가봐야할 일이 있어서... "
" 얘.. 니네 회사는 휴일에도 사람부려 먹냐... "
" 그러게.. 오빠네 회사 너무한다... "
" 직장인이란게 다 그렇치.. 어쩌냐.. "

진석의 누나와 미정이 진석을 향해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내자 진석이 미정을 바라보며 자신도 어쩔수 없다는듯 말을 건냈다. 하지만 진석이 제사를 마치고 바로 올라가려는 이유는 수진이 때문이였다. 자신의 집에서 외롭게 혼자있을 수진을 생각하니
진석은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더우기 오늘 수진은 남편을 만나 결말을 짓을 것이라고 진석에게 말을 했었다. 그랬기에 진석은 집으로 올때부터 제사를 지낸뒤 바로 올라가리라 작정을 했었던 것이다.


" 띵동.. 띵동.... "
" ..... "
" 띵동.. 띵동... "
제사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진석이 몇번을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이상하다는듯 진석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

" ...... "
진석은 거실에 어둠만이 짖게 깔린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지자 수진이 집에 없는것 같다는 생각에 일순간 당황하며 짙은 어둠속에서 익순한듯 벽에있는거실 스윗치를 올렸다.
" ..... "
" 수진아.... "
불빛이 거실을 환히 밝히는 순간 진석이 거실에 웅크린체 무릎에 얼굴을 묻고있는 수진을 발견하자 놀란듯 수진의 이름을 불렀다. 더우기 그런 수진의 곁에는 수진이 마신듯한 소주병 서너개가 널부러져 있었기에 진석은 더욱 놀랬다.
" 야.. 한수진... "
" ...... "
진석이 조금 높아진 언성으로 수진을 재차 부르자 그제서야 수진이 무릎에서 얼굴을 들어 진석을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무릎에 파묻고 있던 수진이 얼굴을 들어 자신을 보는 순간 진석은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수진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수진의 눈은 수진이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혼자 울고 있었음을 암시하듯 퉁퉁 부어 있었다.
" 수진아.... "
그런 수진을 바라보며 진석이 수진에게 걸음을 옮겨 수진옆에 무릎을 꿇으며 수진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 진석아...... 으흐흑... "
" ..... "
순간 수진이 쓰러지듯 진석의 품으로 안기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 흐흐흑... 흐흑.... "
" ..... "
" 나.. 너무 힘들어.. 진석아... 흐흑... "
" ...... "
" 나도 내가 이럴줄 몰랐어.. 근데 너무 힘들어.. 진석아.. 흐흑... "
" 수진아.... "

진석은 자신의 품에안겨 흐느끼는 수진의 머리를 감싸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십일년간을 친구로 지내온 수진이였지만 한때는 수진을 여자로 느꼈고.. 그 감정은 아직도 진석의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은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런 수진이 자신의 품에 안겨서 흐느끼자 진석은 처음으로 수진의 남편인 태우에게 참을수 없는 울분이 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런 진석의 울분은 수진을 울게 만든 또다른 장본인이 주영에게도 마찬가지로 쏟아지고 있었다.

" 이혼하기로 했어... 그이도 순순히 동의했고... "
수진이 울음을 추스린뒤 퉁퉁 부어버린 자신의 눈가를 진석이 건낸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내며 입을 열었다.
" 그럼 넌 앞으로 어떻게 할꺼야... "
" 모르겠어... 집은 나한테 넘겨 준다고 하길래.. 직접 부동산에 내놓으라고 했어..
그집 팔리면 지낼곳을 일단 찾아 봐야지... "
" ...... "
" 그때까지만.... 나.. 여기 있으면 안될까... "
" 그래라... "
수진의 말에 진석이 짧게 대답했다.
" 너한테.. 미안해.... "
" 뭐가.. 미안해... "
" 너한텐 늘 신세만 지는것 같아.... "
" 그런소리 하려면 우리집에서 지낼 생각하지마라.. "
" ...... "
진석은 수진의 미안하다는 말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언성을 높였고 그런 진석을 수진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리에 누운 진석은 결국 남편과 남남으로 돌아서버린 수진의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비록 자신의 가슴에 숨겨진 진실을 모른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린 수진이였지만 진석은 단한번 그런 수진을 미워하거나 수진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파탄으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단 한번도 가진적이 없었다. 그저 수진의 곁에서 수진을 가까이 바라볼수 있다는 사실으로만으로 진석은 자신의 마음을 달랠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수진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아쉽게 끝내고 만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가장 친구였던 주영의 배신으로 말이다.

" 똑.. 똑.. 진석아... "
수진의 생각에 잠겨있던 진석이 방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부르는 수진의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 무슨 일이냐... "
진석이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며 문앞에 서있던 수진에게 물었다.
" 진석아.. 나.. 오늘만 여기서 같이자면 안될까... "
"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야... "
수진의 말에 진석이 당황스러운듯 말을 더듬었다.
" 혼자 못자겠어... 오늘만 네 옆에서 잘께... "
" ...... "
" 무서워서 그래.. 진석아... 안될까.... "
진석이 말을 않자 수진이 다시 물었고 그런 수진의 물음에 한참을 망설이던 진석이 방문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몸을 돌렸다.


" 진석아.. 생각나니.... 삼학년때 였던가.. 지리산에 모두 놀러 갔던거... "
진석의 옆에 이불 하나를 더 편체 누워있는 수진이 진석에게 물었다
" 지리산... "
" 응.. 지리산... 우리 부모님 사고로 돌아가시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너랑.. 미국에 있는 은진이랑... 그리고.......... 모두 함께 놀러갔던거... "
" 그래.. 생각난다... 벌써 그게 몇년전이지... "
" 팔년전이지.. "
" 그래.. 벌써 팔년전이구나... "
" ...... "
" 갑자기 그때일은 왜... "
수진이 잠시 말을 않자 석진이 수진에게 되물었다.
" 기억안나... 그때... 지리산에서 있었던 일... "
" ..... "
수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느낀 진석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한에 잠겼다. 그 당시 진석은 부모를 잃고 힘들어 하는 수진을 바라보며 늘 안타까워 했고 그런 수진을 위로차 은진과 주영을 동반하여 지리산으로 산행을 갔었고 그렇게 떠났던 여행의 마지막날 진석은 수진에게 자신이 수진을 여자로 바라보고 있음을 고백했고 그런 진석의 고백을 수진은 단호하게 거부했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서먹해진 수진과의 사이를 다시 회복하기까지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수진과의 사이가 회복되어갈쯤 수진이 자신에게 했던말이 진석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 진석아.... 남자와 여자가 평생 친구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데.. 하나는 두 사람 모두의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두 사람의 기억속에 서로의 존재가 망실되지 않은체 편한 존재로 남아야되고... 다른 하나는 친구 사이였던 남녀가 한순간 그들을 사랑이란 감정앞에 노출시켜서 서로의 벽을 만들었다가 그벽을 훌쩍넘어 홀가분해질때 두 사람은 비로써 이성이란 성을 인식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가 된데.... ]

진석은 그당시 수진이 자신에게 했던말을 떠올리며 씁쓸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수진에게 남녀간의 친구가 되기위해 또 다른 조건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건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품었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체 그 감정을 삭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때도 가능하더란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여기 이렇게 있음을 덧붙여 말이다.

" 무슨 생각해.... "
" 어.. 아냐... "
" 그런데 왜.. 대답이 없어... "
" 뭐 물어봤어.. "
생각에 잠겨있느라 수진이 무슨말을 했는지 모르는 진석이 수진에게 물었다.
" 됐어... 그냥 자... "
" 싱겁긴.. 자자... "

말을 마치자 진석은 몸을 돌려 수진에게 등을 돌린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수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진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석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통에 자신의 물음을 듣지 못했다. 아마도 진석은 지리산에서 있었던 그 당시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뒤 거절당했던 그때를 말이다. 그러나 진석은 모를 것이다. 그당시 자신의 가슴속에도 진석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렇게 수진의 가슴속에서도 자리하고있던 진석의 마음을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진석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는걸 진석은 모르고 있으리라...

그렇게 지난날의 시간을 회상하며 진석의 등을 바라보던 수진의 손이 진석의 어깨를 가만히 잡으며 몸을 진석의 등가까이로 움직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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