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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행랑아범 1부 (고전 야설)

1833년 겨울,
여느해처럼 심한 눈보라가 온 마을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산비탈을 내려오던 4명의 식구들은 거북이걸음으로 행보를 하고있었다.

"아빠...너무 추워요..."
"조금만 참아...사내자식이 그것도 하나 못참니..."

12살박이 아들이 9살먹은 딸보다도 더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엄마도 좀 쉬어야지..."

배가 산만하게 불어오른 엄마는 보자기를 뒤집어 쓴 채, 코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용해 인석아...어서 걷기나 해..."

아침부터 걷기 시작한지가 벌써 몇시간 째인지 모른다.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누런종이를 꺼내, 큼직한 글자를 다시 살펴보더니,방향을 틀었다.

"이쪽이다...조금만 가면 돼...조금만 참아"
아내는 아무말없이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드디어 다왔다..."

낡은 기와집앞에 다다르자 딸아이가 좋아서 소리쳤다.아버지는 조심스레 문을 열더니 굵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님..."

거친 바람소리에 목소리가 묻혀버리자,그는 조금더 크게 소리쳤다.

"마님..."

그러자 안방문이 열리더니 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기품있는 얼굴을 한 젊은여인이 고개를 내밀었다.그들은 본 여인은 눈을 크게 뜨더니,반가운 기색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게 누구냐..."

기품있는 얼굴과 어울려 목소리에선 고상함이 풍겼다...멀뚱멀뚱 그녀를 쳐다보는 딸을 제외하고는 식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뭐하느냐...어서 들어오지 않고..."

그녀는 진심으로 반가운듯, 그들을 손수 사랑방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황송한 듯, 머리를 조아리고 사랑방으로 안내됐다.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5년전 그녀의 집을 떠났었다...하늘을 찌를듯한 권세로 사방에 명성을 떨치던 그녀의 가문은, 순조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된 이후에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대나무처럼 곧은 선비였던 그녀의 남편은 향리들의 수탈과 농간에 맞서 대항하다가, 일찍이 세상을 떳다. 그때가 5년전. 남편은 잃은 그녀는 자식도 못 가진 채,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렸다.하지만 대가집 딸이었던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정성을 다해 남편의 장래식을 치르고, 남은 시어머니를 모셨다.하지만 원래 병석에 누워있던 늙은 시어머니마저도,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는 6개월만에 세상을 등졌다.당시 행랑채에 거주하던 그들 식구는, 큰마님까지 세상을 떠나버리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그 집은 주인과 머슴사이가 좋기로 유명했던 집이었다.당시의 성리학적가치관이 붕괴되고,근대적인 사상이 유입되면서 하인과 주인간의 사이는 예전처럼 경직된 관계가 아니었다. 노비제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특히 18살의 나이로 시집온 마님은 행랑아범의 자식이나 처가 아프면,손수 약을 사와 먹이기까지 하고, 하인들 역시 정성을 다해 주인집을 섬겼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주인집 식구들이 모조리 세상을 뜨니, 행랑아범이던 그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님만 홀로 집에남게되자,그들은 더이상 행랑채에 머물수 없었다.행랑아범의 착한 심성과 부지런함을 알고 있던 그녀는 한사고 만류했지만,행랑아범? ?더 이상 그녀의 집 식량을 축낼수 없었다.

행랑채식구들이 눈물을 삼키며 떠나자,마님은 친정집에 매달 조금씩 도움을 받으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갔다. 뼈대있는 가문에서 자라난 그녀는 오로지 자수와 서예만을 하며 홀로 외로이 지내었다.그러던 중 몇년이 지나,산너머 인근 동네에 머슴살이를 하던 그들에게 전갈이 온것이다. 집안 일이 고되서 그러니, 다시 돌아와 줄 수 없냐는 거였다.그녀는 거친 집안일을 해보지 않은터라, 혼자 살림을 꾸려나가기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더구나 겨울때만 되면 땔감구하기가 힘들어 걱정을 했다. 손수 산으로 올라가 땔감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형편이 안되어 시장에서 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행랑아범은 아는 머슴으로부터 전갈을 받고는, 뛸듯히기뻐했다. 새로이 그들을 맞은 주인집에선 그들을 심하게 박대하고, 심지어 마누라
에게 품팔이를 해서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했다.밤마다 추운 행랑채에선 아내와 아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그들은 밤중에 짐을 싸고 아무말없이 탈출을 했다. 그래서 눈보라를 맞으며 산을 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어 보이더니, 그의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엽고 예쁜아이였다.그날이후 그들은 다시 행랑채에 머물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몹시 추운 새벽이었다.
땔감을 하기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행랑아범은, 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켜며 몸을 비틀었다. 두리번거리며 지개를 찾던 그는 마당구석에 놓여있는 지개를 발견하곤,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조용히 물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니,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원래부터 부지런한 마님이 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청소를 한다고 생각한 그는,소리없이 웃어보이고는 지개를 지고,대문을 나섰다. 아내가 어련히 다 알아서 할까...

그녀는 아마 아내의 몸을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대문을 나서 한참을 걷던 그는 우뚝 멈춰섰다. 짚신이 끊어진 것이다. 할수 없이 짚신한짝만 신고 끙끙거리며 다시 돌아온 그는, 부엌문 옆에 쓰러진 짚신을 향해 걸어갔다.자루를 열어 짚신하나를꺼내면서 몸을 일으키던 그는 몸을 굳혔다. 문틈사이로 힐끗 부엌안의 광경을 본 것이다. 얼핏 봤지만 분명히 사람의 몸뚱이였다. 짚신을 한손에 든 그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끼며, 도리질을 했다. 마님이 새벽마다 몸을 씻는구나. 남편을 잃은 아녀자들은 새볔마다 마음을 정갈하게 가라앉히기 위해 멱을 감는다는 이야기가있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골랐다. 옛부터 정성을 다해 모시던, 마님이다. 더구나 자기식구들에겐 생명의 은인이다. 하지만 아내의 임신으로 몇달동안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그의 하체는 그의 의지를 거역하고 묵직해졌다.하지만 상기된 얼굴로 멍하니 서있던 그는, 얼마못가 숨이 가빠지는걸 느끼며 다시 몸을 굽혔다. 이번에는 부엌안의 광경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는 숨을 멈췄다. 백옥같이 하얀 등짝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래에는 큼직한 두 엉덩이가 무겁게 나무의자를받치고 있었다.그의 입에서 끈끈한 침이 주루룩 흘러내렸다.정신을 차린 그는 몸을일으켜, 터질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제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미친사람처럼 재빨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대문을 나섰다. 그날따라 힘이 넘쳤는지,그는 평소보다 두배는 됨직한 땔감을 메고 산을 내려왔다.산을 타고 내려오는 그의 모습은 무언가에 반쯤홀린 실성한 사람의 모습같았다.

다음날 새벽,그는 땔감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지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허겁지겁 옷을 입고는, 마당으로 나갔다. 아직 먼동이 터오는 중이라, 주위는 촉촉한 안개로아늑했다. 그는 고요한 안마당을 가로질러 부엌문앞에 다다랐다. 그리곤 기지개를 키는 척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도 그의 안색을 본 아내가 아픈곳이 있냐며 걱정했지만, 그는 어색하게 웃어넘기고 잠자리에들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몇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 수가 있었다.

올해 그녀의 나이는 24 살, 비록 평소에 그가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리지만, 나이로 따지면 자신의 막내동생뻘 되는 셈이다.그는 먼동이 터올때까지 한참동안을 부지런히 마당을 쓸고,부엌문 옆 담벼락에 붙어 새끼를 꼬았다.그러던 중 얼마후에 부엌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안방과 부엌은 바로 통하는 문이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물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빗자루를 들고 조용히 부엌문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낡아 튿어진 문틈사이로 조그맣게 구멍이 뚫려있었다.그는 또다시 숨을 들이켰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멍에 눈을 갖다대었다.

오늘도 역시 그녀의 등이 제일 처음보였다. 가느다란 허리는 무거운 앞가슴을 힘겹게 받치고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엉덩이는 펑퍼짐하게 나무의자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포동포동하고 백옥같이 하얀 엉덩이였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왜 이렇게 서있는지, 만약 들키게 되는 날이면 쫒겨나는 건 둘째치고 멍석말이를 당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그는 이성을 찾으려고 부지런히 마당을 쓸었다.그는 먼지하나 떨어지지 않은 마당을 쓸고 또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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