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직을 위해 사육사 숙직실에서 잠을 자던 태석은 요의를 느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나니, 다시 잠도 안 오고 해서 담배나 한 대 피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보았다.
아직 서늘한 한밤의 공기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태석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는 인적이 끊긴 한밤의 동물원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길가의 벤치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그곳은 밝은 보름달이 비쳐 내리고 있었다.
보름달.. 아니 밝다 못해 오히려 붉게 느껴졌다.
붉은 보름달..
왠지 그 붉은 달을 보고 있자니, 태석은 알 수 없는 기운에 몸이 취하여 드는 것 같았다.
"흠..."
'왠지.. 기분이 묘해 지는 걸...'
그리고 저 멀리서 여러 동물의 울음소리들이 한밤의 텅 빈 동물원 경내를 울려 퍼져 나오고 있었다.
"녀석들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구나..."
많은 동물들은 야행성이라 밤에 활동하다가 정작 관람객들이 오는 낮에는 늘어져 자기 일쑤였다.
그는 한동안 그 동물들의 울음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녀석들도 지금.. 저 보름달의 기운에 취해있는 것일까..?'
지금 들려오는 울음소리들을 듣고 있던 태석은 마치 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동물들이 보름달의 저 붉은 기운에 취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리들에는 동물들이 교미할 때 내는 울음소리들이 간간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어..! 저 보름달의 기운이.. 지금 녀석들을 발정이 나게 하는 건가..?'
태석은 의외의 울음소리에 약간 의아해 했다.
"지금 이 근처에 발정기에 들어서 있는 녀석들이 있었던가..?"
그는 가끔 발정기 이외에는 교미를 하지 않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지금의 자신과 비교할 때가 있었다.
사육사 경력 18년의 태석은 결혼생활 16년의 아내와 중학생 아들 녀석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태석에게는 그 가정이란 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였다.
예전부터 그는 이미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그런 그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있었다.
이미 자기만의 세상을 가져버린 아들녀석은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리고 태석 역시 언제부터인가, 이제 그런 아들의 태도에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에게 있어 가정은 이미 마음 속에서는 타인이었다.
대신 태석에게는 지난 십 수년간 자신이 돌봐오던 동물들이 있었다.
서울대공원 근처에 사는 그는 날마다 일찍 동물원으로 나와 후배들과 함께 동물우리들을 청소하고, 관람객들이 오기 전에 아침먹이를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사육사들은 몸이 약한 새끼들을 돌보느라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며 돌봐야 할 때도 있었고, 몸이 약한 고릴라를 위해서 한약까지 달여 먹이는 선배 사육사도 있었다.
임신이 쉽지 않은 동물원에서 어쩌다 정말 힘들게 새끼라도 태어나면, 모두들 자기 자식이나 손자가 태어난 것처럼 기뻐했다.
그 동물들이 그에게는 이미 자식이었고 가정이었다.
태석은 가족에게서 잃은 정을 자신이 돌보는 동물들에게 쏟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부러 일을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숙직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 역시 그러했다.
근래 2년 동안 아내와 제대로 섹스를 한 적이 없었다.
의무적으로라도 하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지만, 그의 물건은 일어서지가 않았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내 역시 그럴 지도 몰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그런 의사를 밝힌 적은 없었다.
그저 그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사람들과의 관계란 것에서 벗어날 용기까지는 없을 뿐이었다.
대신, 아직 30대 후반인 아내가 혹시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지도 이젠 관심이 없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태석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아예 발기불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자려고 들어간 여관에서 그는 이 사실을 알았다.
'그냥.. 아내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는 병원에서 단지 정신적인 이유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일단 안도를 하긴 했지만, 태석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의 발정기는 끝나 버렸나 보군...'
하지만 태석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한때 아직까지 아내에게 의무방어전을 치러주고 있던 시절에는 필요한 발정기에만 교미를 하는 많은 동물들이 무척 부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은 발정기마저 완전히 끝나 버렸다.
이젠 자신이 동물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태석은 자연의 규칙마저 무너뜨리며 생명체를 가진 것들을 미혹에 빠뜨리는 저 붉은 달의 기운이 새삼 궁금해졌다.
그 기운은 동물들을 미치게 하고 발정이 나게 하여 밤새 울부짖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보름달은 생명체들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무엇보다 이 붉은 달 아래 서있는 태석 자신도 점차 그 기운에 미혹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그는 문득 자신의 시계를 보았다.
이미 밤 1시가 훨씬 지나있었다.
잠에서 깬 뒤, 이곳에 나와 앉은 것이 어느새 1시간이나 된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갑자기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동물들이 궁금해졌다.
그가 책임자로 관리하고 있는 시설은 서울대공원에서 작년 초에 새로 문을 연 개코원숭이의 집단우리였다.
이 시설은 서울대공원에서 기존 시설을 보완하면서 신규 시설로 확충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동물원의 역할이란 것이 사람들의 휴식이나 자연교육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야생동물의 보호나 학술적 연구를 담당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따라서 기존 시설에 대한 보완과 재검토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여겨지는 분야에 대한 추가 예산이 책정되게 되었고, 일정한 규모의 신규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런 필요성에 의해 대공원 내의 휴게시설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공원 판매시설 현대화계획' 등이 시작되었고, 또한 신설된 사육시설이 그가 맡고 있는 개코원숭이의 집단우리였다.
일단, 이 신규시설의 주요한 목적은 동물원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라는 것이었지만, '감소중인 동물들의 보호와 그들의 집단이 보여주는 사회성에 관한 연구'라는 학술적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자연에서는 동물들의 '협동'이나 '사회화'라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현상의 하나였다.
물론 곤충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동물들, 특히 포유류 중에서 가장 사회성과 협동성을 지니고 있는 동물들을 꼽으라면 사자와 침팬지, 그리고 이 개코원숭이였다.
또한 침팬지와 개코원숭이는 영장류들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사자와 침팬지에 비하여 비교적 국내에 덜 보급된 개코원숭이가 특히 예산을 타낼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개코원숭이는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주로 서식하는 원숭이인데, 이미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등에서도 이 개코원숭이의 일종인 맨드릴비비나 비교적 작은 종류인 망토원숭이 등을 키우고 있었다.
서울대공원에서 이번에 도입한 개코원숭이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디오피아에서 남아프리카에 걸쳐 넓게 서식하고 있는 사바나개코원숭이였다.
이놈들은 원숭이류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놈들이었다.
물론 고릴라나 오랑우탄, 침팬지는 유인원류로 분류되므로,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크다는 것이다.
이 놈들은 다른 원숭이들과는 달리 땅위에서 사는데 성질이 몹시 사나웠다.
특히 수컷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협적이어서, 야생에서는 표범도 피해간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사바나 지역의 초원이나 관목림 또는 숲의 주변 지역 등에서 살고 있는데, 30-150마리 정도의 큰 집단을 이루며 수십 평방 km의 행동권을 이루고 산다.
그리고 이 집단은 수컷 1마리가 다수의 암컷을 독차지하는 할렘을 가지고 있는 망토원숭이나 맨드릴비비와는 달리, 우두머리 수컷의 지도 하에 소수의 수컷들과 다수의 암컷, 새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식은 주로 과일이나 곤충을 먹고살지만, 가끔 풀숲에 숨어있는 가젤영양이나 멧토끼 등을 사냥하기도 하는데, 이때 여러 마리가 서로 흩어져서 몰이꾼처럼 사냥감을 에워싸 잡는 협동사냥을 하였다.
이전에는 워낙 넓게 분포되어서 지역에 따라 각각 3종류로 구분되어 불렸지만, 요즘에는 모두 사바나개코원숭이라고 불리고 있다.
개코원숭이들은 원숭이들 중에 가장 생김새가 험악한데, 검은색을 띈 얼굴은 이름 그대로 개처럼 코와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고, 성숙한 수컷은 콧날이 길고 남성적인 강인함을 보여주는 인상을 지녔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털은 주로 회색이며, 특히 수컷은 어깨까지 닿는 긴 갈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몸통의 앞부분이 떡 벌어져 있어 단단하고 팔이 다리보다 긴데, 지상생활을 하는데 용이하며 손가락이나 발가락 모두 잘 발달되어 있었다.
또한 수컷은 암컷보다 몸집이 약 2배 가량 큰데, 크기는 네 발로 섰을 때 사람 허리 아래까지 오는 등 송아지 만한 개들만큼 컸다.
야생의 경우 무게가 보통 수컷이 35kg 정도 되지만, 체구가 큰놈들이나 동물원 등에서 사육한 경우에는 50-55kg 정도의 무게를 지니기도 했다.
이 개코원숭이의 집단우리는 기존의 원숭이나 유인원 시설들보다 큰 규모로 지어졌다.
사실 그동안 야생에서 큰 집단으로 사는 동물들이라 하더라도, 큰 동물의 경우는 몇 마리씩 밖에 사육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동물들이 배우자를 같은 동물원 내에서 찾지 못하는 경우조차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공원에서는 동물들의 근친 교배를 방지하기 위해 '에버랜드' 같은 타 동물원과 사돈관계를 맺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단 큰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있던 데다 별도의 학술적 목적도 있던 개코원숭이우리의 경우,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큰 시설로 지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야생에서처럼 마냥 크게 지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50마리 정도의 집단은 여유 있게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져야 했다.
시설의 경우 처음에는 기존 시설들처럼 '야외 방사장'과 '내실'로 설계되었으나, 이후에 '실내 방사장'이라는 흔하지 않은 시설로 변경이 되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 많은 활동공간이 요구되었음에도, 사정상 충분한 부지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다른 동물우리들처럼 주간의 야외 공간과 야간의 실내 동물숙소를 따로 두지 않고, 모두 실내 시설로 하여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로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동절기에 열대지방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던 기존의 내실들이 너무 비좁고 시설이 미비하여, 관람객들의 실망하는 여론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새로운 관람시설로 개선하자는 전반적인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열대 지역에서 사는 개코원숭이들의 생태에 맞추어 일년 내내 20도 이상의 일정한 기온을 유지시키는 넓은 실내 방사장이 설계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아프리카 원숭이관의 시설처럼 열대 식물을 실내 방사장 내에 같이 배치하여 보조 식물원의 역할도 겸하게 하였다.
개코원숭이우리는 아프리카 원숭이관 옆에 증축되는 형태로 지어졌는데, 개코원숭이 거주구역과 관리시설로 나뉘어져 있었다.
개코원숭이 거주구역은 네 곳의 벽 중 두 군데는 관리시설과 맞붙은 벽으로 되어있었고, 나머지는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높은 철골과 강화 유리로 되어서, 밖에서 보면 마치 식물원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IMF가 있었고 예산이 축소되고 하면서 하마터면 계획이 백지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공사에 들어갔던 데다가, 우여곡절 끝에 비록 예정보다 반년 정도 지연이 되었지만 완성은 되어졌다.
그렇게 하여 50마리까지 여유 있는 수용이 가능하고, 우거진 열대식물이 함께 있는 이 실내 개코원숭이우리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주로 유인원 쪽을 담당하여 왔던 태석이 이 새로운 시설의 책임자가 되었다.
개코원숭이우리 앞까지 온 태석은 출입구가 있는 건물 뒤편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었다.
그런데 안쪽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개코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이구나..!'
태석은 그 소리만 듣고도 그 개코원숭이가 어떤 놈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모든 개코원숭이들의 울음소리를 분간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한 놈의 소리만이 특별히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개코원숭이들을 캐나다의 토론토 동물원에서 일부 들여왔지만, 그 수가 적은데다 필요한 연구를 위해서는 야생에 가까운 원숭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개코원숭이들의 주요 서식지인 탄자니아에서 들여왔다.
탄자니아에서는 두 곳의 국립공원에서 2차에 걸쳐서 원숭이들을 들여왔다.
한 곳은 탄자니아 북부의 마니아라 국립공원으로 사자와 개코원숭이들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었고, 야생에서 보호받은 어린 개코원숭이들이 필요할 때 포획되어 서방의 연구시설이나 동물원들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탄자니아 동부의 곰베 국립공원이었는데, 이곳은 침팬지 연구로 명성이 높은 제인 구달 박사의 연구소가 있는 곳으로, 야생상태의 침팬지나 개코원숭이 등의 집단과 사회성이 연구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여 도입된 개코원숭이들은 야생에서의 1:2 성비에 맞추어 수컷 8마리, 암컷 17마리, 모두 25마리였다.
그리고 이미 임신중인 암컷들도 일부 있었으므로, 그 사이 태어난 새끼들까지 합하여 지금 개코원숭이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 31마리였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 2차 분으로 도입된 개코원숭이들 중에 사육사들의 흥미를 끄는 특별한 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 놈이 특별히 체격이 좋고 용맹했으며 또한 영리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가을, 그 놈이 서울대공원으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개코원숭이우리 안에 일정한 권력 구도와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이 놈은 기존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끝내 우두머리가 되고 말았다.
당시 그 과정을 지켜보던 교수, 학생들과 사육사들은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용맹함이나 힘도 물론이지만, 그들의 집단 사회 속에서 책략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그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새 학생들은 사육사들이 원숭이들에게 붙여준 '코돌이' '코순이' 하는 식의 한국식 이름이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놈만은 특별히 '보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이 별명은 사육사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어 이제 그놈의 이름은 '보스'로 바뀌게 되었다.
하긴 이 편이 관람객이나 어린이들에게 개코원숭이들의 사회 생활을 설명하기에도 훨씬 편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보스란 놈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 놈이 기존의 개코원숭이 사회에서 변형된 새로운 집단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원인은 동물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일단 서울대공원 안에 새로운 개코원숭이 사회가 형성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동물원 측에서 기대했던 대로 자연상태 그대로의 사회를 재현하기는 힘든 것이었다.
야생에서 개코원숭이 사회는 우두머리 수컷의 지도력과 권위로 집단을 이끌기는 해도 실제로는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
물론 이것도 망토원숭이와 맨드릴비비를 제외한 나머지 개코원숭이의 경우이다.
개코원숭이 수컷들은 새끼일 때는 태어난 집단에서 어미의 품에서 자라지만, 일단 성장하면 그 집단을 떠나야 했다.
반면에 암컷들은 그대로 남아 모계 혈통의 집단의 구축하며 혈연에 의한 확고한 사회적 유대와 계급사회를 이룬다.
높은 혈통에서 태어난 암컷은 그 어미의 바로 밑의 지위를 이어받으며 다른 암컷들보다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집단은 암컷들에 의해 그 영토와 역사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수컷들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 자신의 지위를 구축해야 했다.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그 집단의 암컷들과 관계를 형성하여야 그 집단에 비로소 정착할 수 있었다.
개코원숭이들은 암컷이나 수컷이나 서로 여러 마리의 애인들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수컷들은 그 집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암컷을 놓고 다른 수컷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거나 정치적인 동맹을 맺어야 했다.
개코원숭이 수컷들이 암컷들보다 크기가 2배나 되고 송곳니와 같은 무기가 있는 것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이런 투쟁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으로 일부다처제 동물들의 전형적인 경향이었다.
수컷들은 사실상 용병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 집단에 들어가 암컷들과 새끼들을 보호하고 사냥을 하며 자신을 인정받지만, 대신 나아가서 그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집단에 확고한 기반을 내린 우두머리 수컷이 보다 많은 암컷들을 애인으로 두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것이라, 대부분의 수컷들은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만 머물다 새로운 암컷을 찾아 떠나고는 했다.
따라서 한 집단에서의 수컷의 지위는 확고한 암컷들의 지위와는 달리 여러 가지 변동 요소가 많으며 빈번하게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야생에서의 사회생활은 동물원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선 동물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집단이 이동하며 생활하던 수십 평방 km의 넓은 활동공간을 상실하게 하였다.
이것은 공간의 제한으로 인해 다른 집단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제 수컷들도 한 집단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개코원숭이들이 여러 곳에서 나뉘어 도입됨에 따라 여러 혈통의 암컷들이 한 집단에 섞여버렸고, 따라서 기존의 집단들처럼 혈연으로 연결된 암컷집단이 인위적으로 붕괴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모계 중심사회의 관습과 전통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또한 일정하고 안정적인 먹이의 공급과 인간이라는 새로운 존재들과의 별도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사냥과 집단의 보호를 담당했던 기존 수컷들의 역할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수컷이 바로 '보스'였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기존의 모계 전통이 계속되던 초기의 개코원숭이 사회에서 이 보스는 빠르게 우두머리의 자리에 올랐고, 그 이후 조금씩 이 사회는 망토원숭이 사회와 같은 보다 강력한 1인 수컷의 독재체제로 바뀌어 갔다.
물론 다른 수컷들의 반발과 결집을 우려하여 기존처럼 암컷들을 일부 공유하기는 했지만, 보다 좋은 암컷들은 자신이 독차지하는 등 빠르게 중앙집권화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보스는 항상 사육사나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고, 학술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사육사로서의 태석의 관심은 새로 새끼가 태어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그 보스에게 가 있었다.
묘하게 마음을 끄는 놈이었던 것이다.
다시 보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 오늘은 유난하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태석은 그 울음소리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개코원숭이우리가 완성되고 외국에서 원숭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국내 모 K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공동 학술연구가 진행되었다.
또한 초기에는 매스컴에서도 새 시설에 비교적 관심을 가져 주었고, 덕분에 태석도 뉴스나 심지어 오락프로에도 잠깐 얼굴이 비춰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매스컴의 반응도 한때였고, 오히려 올해 초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진행되던 대학과의 공동연구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그것은 대학 측에 지원되던 외부 기업의 연구자금이 그 기업이 구조조정 문제에 휘말리면서 중단되었기 때문이었고, 서울대공원 측의 관련 예산 역시 올해 들어 대폭 절감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윗선이 교체되면서 생긴 내부적인 문제도 상당히 포함되는 것이었다.
새로 자리에 앉은 그들이 보기에, 돈을 들여 개코원숭이 연구 같은 것을 하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느냐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예산 편성에서 밀려난 것이다.
채산성 문제만을 따진 그들에게는 학술적 가치보다는 당장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더 어필하고 부가가치를 얻느냐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개코원숭이우리가 그 규모나 홍보 때문에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상당히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윗선에서 개코원숭이 일부를 외국에 매각하고 시설 규모를 줄이자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책임자인 태석으로서는 매우 울화통 터지는 일이었다.
기껏 시설을 확충하고 동물들을 들여오고 했으면서 행정적인 문제로 진행되던 연구 프로젝트마저 중단시켰으니, 이럴 바에도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세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석은 나중에 안에 들어가면 카메라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학과 공동연구를 할 때 필요에 의해 시설 여러 곳에 설치했던 카메라를 태석은 아직 가동시키고 있었다.
앞으로 다시 공동연구가 재개될지도 몰랐고, 그동안 축적되어온 데이터가 아까웠던 것이다.
개코원숭이우리는 곳곳에 바위와 수풀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볼 때 시각적으로 사각지대가 많았다.
따라서 시설의 카메라들은 그 사각지대도 촬영할 수 있는 위치에 4곳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무 위나 벽 등에 설치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이상한 것을 눈치챈 개코원숭이들이 자갈이나 과일 등을 던져 결국에는 망가뜨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벽에 숨긴 폐쇄회로 카메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장이 잦은지라 태석이 직접 카메라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공동 연구할 때 사용하던 시설내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촬영되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태석은 계속되는 그 울음소리들에 이끌린 나머지, 지금 개코원숭이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피우던 담배를 끄려고 바닥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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