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적은 막내 권준식을 낳다가 산고로 죽은 첫 번째 아내와 삼남일녀를 두고 있었다. 첫아들을 비교적 늦은 나이인 스물여덟에 얻었고 둘째 아들은 서른에 얻었다. 그리고 5년 뒤 서른 다섯에 딸, 권소란을 얻었다. 권소란을 얻었을 때 다음에 늦둥이 권준식을 얻을 것을 몰랐던터라 당연히 권소란은 막내이면서도 외동딸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려서부터 금지옥엽으로 컸으니 자존심 강하고 두려운 것 없는 귀공녀로 어찌 시집가서 ‘소박’을 맞을 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권소란이 소박을 맞아 친정집에 온날 권씨문중은 난리가 났다. 비단 딸자식이 평탄한 일생을 살지 못하고 고생길에 접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양반사회에 이 일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사건인 것이다. ‘도대체 딸을 어떻게 키웠길래 소박을 맞소?’ 권세적은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권소란은 친정으로 돌아오면 친정식구들이 자신과 같이 분개하며 자기를 위로해 줄줄 알았다. 막 시뻘개진 얼굴로 부모 앞에서 하소연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려하는데, 병석에 파리한 안색으로 누워있던 늙은 권세적이 요 몇 년간 없던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썩 물러가거라! 이 부모 낯짝에 똥물을 끼얹은 년!”
김씨부인은 붉으락 푸르락하는 남편이 졸도할까봐 걱정되어 진정시키느라 애쓰고 권소란은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한번도 아버지한테 큰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냐오냐 키운 내 잘못이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철없는 망아지 같으니라고
권소란은 아버지의 서슬푸른 표정에 그만 겁에 질려 뒷걸음질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자기방으로 달려갔다. 이불 위에 얼굴을 파뭍자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권소란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그날 하루종일 방밖으로 나오지 않고 또 누구도 보려하지 않았다.
다음날, 권준식은 아침을 먹고 누나 권소란의 방 앞으로 가서 방 앞을 이리저리 왕복하며 가만 가만 걸었다. ‘누나!’하고 부르려다가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권소란이 열여덟에 시집갈 무렵 권준식은 아홉 살이었다. 권세적이 기적처럼 마흔 넷에 막내 권준식을 얻은 것이다. 그 대가로 첫 번째 아내를 잃기는 했지만.
권준식에게 있어 권소란은 정말 다정한 큰누나같은 존재였다. 성격이 괄괄한 권소란도 막내동생과 같이 있을 때면 제법 어른티를 내며 보호본능을 느껴 포근히 감싸주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권준식에게 있어 두 형은 나이 터울이 너무 커서 특별한 정이 쌓인 바가 없었다.
그래서 두 형이 한날에 죽었을 때도 별로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권소란은 달랐다. 권준식이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형제의 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권소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나가 슬퍼하자 권준식도 덩달아 슬퍼지며 어떻게든 누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권준식은 망설임 끝에 문 앞에서 조그맣게 불렀다.
“누나.”
권소란은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다가 밖에서 ‘누나’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누님’이라고 정중하게 불러라고 부모에게 혼났으면서도 단둘이 있을 때는 어리광부리듯 ‘누나’라고 부르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권준식이 찾아온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실은 세상이 온통 싫어지고 적으로 느껴져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터였지만 마음 속을 교묘히 파고들어오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화난 와중에도 따스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권소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밖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권준식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그대로 달려와 권소란의 품에 안겨왔다.
“누나!”
“응.”
두 남매는 실로 오랜만에 정겨운 포옹을 하였다. 권준식은 이미 나이 열넷으로 혼인까지하였지만 권소란의 눈에는 예전 아홉 살 때의 치기어린 남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동생의 몸에서 달콤하고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두사람은 한참동안 끌어안고 서로의 체취를 맡다가 이윽고 떨어져 앉았다.
“누나 배 안고파?”
“응. 화가나서 배 안고파.”
“점심도 안먹을거야?”
“응.”
“누나 힘들겠다.”
“응. 힘들기보다 화나 죽겠어.”
권소란은 문득 자신의 처지가 다시 생각난 듯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누나 울지마. 응?”
“흐흑 흐흑... 아빠가... 아빠가 말이지 날더러 꺼지라고 흑... 흑... 너무해... 난 갈데가 아무데도 없는데.”
“누나 왜 울어?”
권소란은 물끄러미 동생의 얼굴을 보다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았는데 부모 앞에서는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온지라 일단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울분에 쌓인 하소연이 끝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 자식(김을동)이 말이지 기생질을 하다 못해, 내가 가장 아끼는,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애를 짐승처럼 겁탈하고도 마치 지가 잘한 듯 나보고 미친년이라고...”
원래 예전부터 그랬다. 권소란과 권준식 사이에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었다. 권준식은 순진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누나한테 이것 저것 숨김없이 부끄러운 것까지 다 말했고 권소란도 남동생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지라 부담없이 이것저것 숨김없이 다 말했었다. 심지어는 같은 동네 사는 청년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나 달거리(월경)이 규칙적이지 않아서 큰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권준식은 누나가 하는 말들이 어떤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고 어떤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차분히 귀를 귀울이고 누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는 했다. 누나가 누군가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화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귀를 귀울여 누나의 말을 오랫동안 들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누나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 권준식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자신이 제대로 말을 알아들은 건지 자신없어하며 가만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누나가 시집간 다음 오년동안 아들을 못나서 구박을 받게 된 것이라는 얘기네?”
권소란은 자신의 고민을 이해해주는 동생이 너무나 반가워 ‘응!’하고 대답하고는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혼자말처럼 투덜거렸다.
“밭이 문제인가? 씨가 문제지.”
권준식은 누나의 말 ‘밭이 문제인가 씨가 문제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누나가 아들을 못낳는 것이 누나 때문이 아니라 자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권소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젯밤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동생앞에서 툭 말해버렸다.
“씨, 나 아무 종놈하고나 몰래 합궁을 해서 아들을 임신할까봐.”
감히 남들 앞에서 내뱉어서는 안될 말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더라도 입밖으로 내어서는 안되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남동생과 아무리 부끄러운 일이라도 숨김없이 말하던 터라 그냥 동생을 믿고 입밖에 내었던 것이다. 마치 동생이 예전에 자다가 오줌을 싼 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먼저 권소란에게 고민을 상담해 왔듯이. 속에 쌓였던 울분을 모두 하소연하고, 또 속으로 생각했던 발칙한 발상을 입밖에 내뱉어 버리자 권소연은 가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권준식은 누나의 품에 안긴 채 ‘나 아무 종놈하고나 합궁을 해서 아들을 임신할까봐’라는 말을 들었다. 남들이 생각하면 경을 칠 생각이라고 발끈했을 것이지만 권준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까지 할까. 또 어찌 생각하면 그럴듯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을 맞았다면 아들을 낳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종놈한테 아들을 얻은 뒤, 아무도 모르게 남편한테 얻은 아들이라고 속이면 그만이다. 속이는 행동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좀 나쁜 짓을 하더라도 평생 소박맞은 채로 울면서 사는 것보다는 나쁜 짓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권준식은 잠시 더 생각해 보다가 누나한테 ‘그거 괜찮은 방법이다.
누나 그렇게 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누나가 집안의 종놈인 돌쇠하고 ‘응응응’을 하는 장면을 상상되었고 그러자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다. 누나가 상스럽기 그지 없는 돌쇠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준식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누나, 내가 아들 만들어 주면 안될까?”
권준식으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끝에 내뱉은 말이지만 누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말이었다. 권소란도 동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끌어안고 있던 동생의 몸을 밀어 떨어뜨려 놓았다.
“뭐?”
권준식은 누나의 반응에 지레 놀라 자기가 큰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당황했다. 아니나 다를까.
“준식아!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야. 너랑 나는 남매잖아! 남매끼리는 합궁하는 거 아냐!”
권소란은 누가 들을까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하지만 힘을 주어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권준식은 누나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을 더듬으며 사과했다.
“누나, 미... 미안. 미안.”
권소란은 남동생이 헬쓱하게 질리며 다급하게 사과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너무 화를 냈다고 생각했다. 잠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다독이듯이 말했다.
“아이고 우리 준식이 아기를 어떻게 낳는 건지나 알아? 고추에 털이나 났니?”
권준식은 누나의 표정이 풀어지자 다소 안심하며, 또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응. 알아.”
권소란의 동생이 말에 흠짓했다. 그렇다 동생은 혼인까지 했다. 아직 어려보이지만 남녀지사의 일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소란은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나지막히 물어보았다.
“색시랑 합궁해봤어?”
권준식 역시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채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색시랑은 아직 합궁해 보ㅈ 않았던 것이다.
권소란은 잔뜩 긴장해서 동생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동생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권준식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음... 이건 말하면 알될 것 같은데...
권준식은 어렴풋이 남한테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왠지 누나를 속이는 것 같아 말하고 싶었다. 망설이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색시하고는 안해봤는데, 형수하고는 해봤어.”
권소란은 빙긋이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튀어나온 동생의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잠시동안 자기가 들은 말이 무슨말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동생의 말을 이해한 뒤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형수하고 합궁을 하다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인가?
“형... 형... 형수랑?”
“응.”
처음에는 동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기와 동생이 서로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아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권소란은 그말이 진짜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놀라서 진정하지도 못하고 말을 더듬으며 다시 물었다.
“어, 어, 어느 형수랑? 큰올케 아니면 작은올케?”
순간, 권소란의 머릿속에 작은올케의 여우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군! 작은올케군! 그 여시같은 작은올케가 독수공방을 참지 못하고 순진한 준식이를 꼬신 것이 분명해. 이 여시같은 년! 그런데 권준식의 대답의 뜻밖의 것이었다.
“둘 다.”
“둘 다?”
“응.”
권소란은 놀라서 다시 입이 벌어졌다. 약간 고지식하면서도 정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큰올케 최소연이 남동생과 그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해보려해도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작은 올케 박보희라면 충분히 그림이 그려졌지만. 한동안 혼란스러워서 권소란은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권준식은 누나가 한참동안 아무말없이 자기를 바라보고만 있자 슬슬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와의 일은 비밀을 지켜야하는 일인데 그만 누나한테 말해버린 듯 했다. 아무리 누나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이라 해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래서 울상이 되었다.
권소란은 문득 남동생의 표정이 울상이 되어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소란은 남동생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지 금방 눈치챘다. 그래서 권준식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로 다급히 말을 꺼내 안심시켰다.
“준식아. 알았어. 나 그거 비밀 지킬께.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 걱정하지마 응?”
권준식은 그제야 안심이 되어 얼굴이 활짝 펴졌다. 역시 누나는 믿어도 좋은 것이다.
두 사람은 그 뒤에도 한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주고 받았다.
서로의 고민을 충분히 얘기해서 속이 후련해 진 후에 권준식은 누나의 방을 나왔다.
권준식이 방을 나간 후 권소란은 묵묵히 동생과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준식이가 올케들하고 날마다 합궁을 하고 있다고? 어쩜 그럴수가...’
생각해보니 동생이 형수하고 합궁을 하고 있는 터였기에 권소란에게 ‘내가 아기를 만들어 줄까?’하고 말할 수 있었을 듯 싶었다. 이미 형수들하고 합궁을 하고 있었기에 도덕관념이 무뎌져서 그런 과감한 발상을 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그것은 누나를 위해서 생각해낸 발상이긴 하지만...
권소란은 생각하다가 동생의 발상이 귀엽다고 느껴져 피식 웃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아무 종놈하고나 배를 맟춰서라도 아들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 나도 준식이 보다 나을 건 없지.’
권소란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머리 위로 이불을 둘러쓰고는 드러누웠다. 동생과 얘기를 할 때는 잠시 울적한 심사가 가라앉고 즐거움까지 느꼈지만 다시금 혼자가 되고 보니 소박맞은 자기의 신세가 마음에 사무치며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불 속 어둠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욱 더 어두운 곳 속에 숨고 싶다는 듯이 이불을 끌어 당기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점차 그 예상치 못한 생각은 점차 그녀의 머릿속에서 확대되어 드디어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그 예상치 못한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 예상치 못한 생각은 ‘준식이하고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들까?’하는 생각이었다.
흔히들 상피붙었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비도덕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몰래한다면, 또 그 대상이 준식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남편인 김을동한테 억지로 강간당하듯이 합궁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동생인 준식이와 합궁을 하는 것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무 종놈하고 배를 맟추느니 차라리 준식이와...’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가로 질렀다. 정신차리자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야! 라고 생각했다
가 다시금 ‘그래도!’하고 생각했다가 다시금 고개를 홱홱 흔들며 자기 뺨을 때리고 정신을 차리려고 하고 하기를 반복했다.
최후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만약 준식이하고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든다면 하루라도 빨리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들어야해, 최소한 아기를 낳는 날이 한달 정도 늦는 범위에서야 시댁에 할 말이 있지.’
즉,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처럼 보통보다 빨리 태어나는 아기가 있듯이, 반대로 보통보다 약간 늦게 태어나는 아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준식이와 합궁을 해서 아기를 임신한다고 해도 너무 늦게 임신하면 시댁에 가서 남편 김을동의 아기라고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b0屛け 전날밤에 김을동이 강간하듯이 권소란의 몸을 취했으니, 빨리 임신하면 시댁 식구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권소란은 어느덧 자신이 치밀하게 계산까지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스스로를 질책하며 다시 고개를 홱홱 흔들어 잡념을 쫓으려 했다.
권준식은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형수들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색시하고 자야겠다. 색시가 웬지 슬퍼하는 것 같아.’
내심 작은 결심을 하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자기 방으로 향했다.
막 도망치듯이 자기 방문 앞까지 도착했는데 저편에서 작은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준식아.”
권준식이 돌아보니 누나 권소란이 손짓으로 오라고 하고 있었다.
권준식이 반가움에 싱긋 웃으며 누나한테 다가갔다. 그러자 누나도 생긋 웃으며 권준식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며 동생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권준식은 누나가 이끄는대로 따라가 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가 방문을 닫고는 둘이 서로 마주 앉았다.
두사람은 마주 앉은 채로 한참동안 서로 말을 안했다. 단지 권준식이 싱긋 웃으면 권소란도 생긋 웃고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권준식은 누나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불렀을 것이므로 누나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고, 권소란은 물론 할 말이 있었지만 쉽게 꺼낼 수가 없어서 그냥 동생의 웃음에 마주 웃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권소란은 동생의 웃음을 보고 마음 속에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권소란이 소박을 맞아 친정집에 온날 권씨문중은 난리가 났다. 비단 딸자식이 평탄한 일생을 살지 못하고 고생길에 접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양반사회에 이 일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사건인 것이다. ‘도대체 딸을 어떻게 키웠길래 소박을 맞소?’ 권세적은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권소란은 친정으로 돌아오면 친정식구들이 자신과 같이 분개하며 자기를 위로해 줄줄 알았다. 막 시뻘개진 얼굴로 부모 앞에서 하소연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려하는데, 병석에 파리한 안색으로 누워있던 늙은 권세적이 요 몇 년간 없던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썩 물러가거라! 이 부모 낯짝에 똥물을 끼얹은 년!”
김씨부인은 붉으락 푸르락하는 남편이 졸도할까봐 걱정되어 진정시키느라 애쓰고 권소란은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한번도 아버지한테 큰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냐오냐 키운 내 잘못이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철없는 망아지 같으니라고
권소란은 아버지의 서슬푸른 표정에 그만 겁에 질려 뒷걸음질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자기방으로 달려갔다. 이불 위에 얼굴을 파뭍자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권소란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그날 하루종일 방밖으로 나오지 않고 또 누구도 보려하지 않았다.
다음날, 권준식은 아침을 먹고 누나 권소란의 방 앞으로 가서 방 앞을 이리저리 왕복하며 가만 가만 걸었다. ‘누나!’하고 부르려다가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권소란이 열여덟에 시집갈 무렵 권준식은 아홉 살이었다. 권세적이 기적처럼 마흔 넷에 막내 권준식을 얻은 것이다. 그 대가로 첫 번째 아내를 잃기는 했지만.
권준식에게 있어 권소란은 정말 다정한 큰누나같은 존재였다. 성격이 괄괄한 권소란도 막내동생과 같이 있을 때면 제법 어른티를 내며 보호본능을 느껴 포근히 감싸주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권준식에게 있어 두 형은 나이 터울이 너무 커서 특별한 정이 쌓인 바가 없었다.
그래서 두 형이 한날에 죽었을 때도 별로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권소란은 달랐다. 권준식이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형제의 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권소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나가 슬퍼하자 권준식도 덩달아 슬퍼지며 어떻게든 누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권준식은 망설임 끝에 문 앞에서 조그맣게 불렀다.
“누나.”
권소란은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다가 밖에서 ‘누나’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누님’이라고 정중하게 불러라고 부모에게 혼났으면서도 단둘이 있을 때는 어리광부리듯 ‘누나’라고 부르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권준식이 찾아온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실은 세상이 온통 싫어지고 적으로 느껴져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터였지만 마음 속을 교묘히 파고들어오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화난 와중에도 따스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권소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밖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권준식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그대로 달려와 권소란의 품에 안겨왔다.
“누나!”
“응.”
두 남매는 실로 오랜만에 정겨운 포옹을 하였다. 권준식은 이미 나이 열넷으로 혼인까지하였지만 권소란의 눈에는 예전 아홉 살 때의 치기어린 남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동생의 몸에서 달콤하고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두사람은 한참동안 끌어안고 서로의 체취를 맡다가 이윽고 떨어져 앉았다.
“누나 배 안고파?”
“응. 화가나서 배 안고파.”
“점심도 안먹을거야?”
“응.”
“누나 힘들겠다.”
“응. 힘들기보다 화나 죽겠어.”
권소란은 문득 자신의 처지가 다시 생각난 듯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누나 울지마. 응?”
“흐흑 흐흑... 아빠가... 아빠가 말이지 날더러 꺼지라고 흑... 흑... 너무해... 난 갈데가 아무데도 없는데.”
“누나 왜 울어?”
권소란은 물끄러미 동생의 얼굴을 보다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았는데 부모 앞에서는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온지라 일단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울분에 쌓인 하소연이 끝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 자식(김을동)이 말이지 기생질을 하다 못해, 내가 가장 아끼는,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애를 짐승처럼 겁탈하고도 마치 지가 잘한 듯 나보고 미친년이라고...”
원래 예전부터 그랬다. 권소란과 권준식 사이에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었다. 권준식은 순진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누나한테 이것 저것 숨김없이 부끄러운 것까지 다 말했고 권소란도 남동생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지라 부담없이 이것저것 숨김없이 다 말했었다. 심지어는 같은 동네 사는 청년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나 달거리(월경)이 규칙적이지 않아서 큰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권준식은 누나가 하는 말들이 어떤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고 어떤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차분히 귀를 귀울이고 누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는 했다. 누나가 누군가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화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귀를 귀울여 누나의 말을 오랫동안 들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누나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 권준식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자신이 제대로 말을 알아들은 건지 자신없어하며 가만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누나가 시집간 다음 오년동안 아들을 못나서 구박을 받게 된 것이라는 얘기네?”
권소란은 자신의 고민을 이해해주는 동생이 너무나 반가워 ‘응!’하고 대답하고는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혼자말처럼 투덜거렸다.
“밭이 문제인가? 씨가 문제지.”
권준식은 누나의 말 ‘밭이 문제인가 씨가 문제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누나가 아들을 못낳는 것이 누나 때문이 아니라 자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권소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젯밤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동생앞에서 툭 말해버렸다.
“씨, 나 아무 종놈하고나 몰래 합궁을 해서 아들을 임신할까봐.”
감히 남들 앞에서 내뱉어서는 안될 말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더라도 입밖으로 내어서는 안되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남동생과 아무리 부끄러운 일이라도 숨김없이 말하던 터라 그냥 동생을 믿고 입밖에 내었던 것이다. 마치 동생이 예전에 자다가 오줌을 싼 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먼저 권소란에게 고민을 상담해 왔듯이. 속에 쌓였던 울분을 모두 하소연하고, 또 속으로 생각했던 발칙한 발상을 입밖에 내뱉어 버리자 권소연은 가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권준식은 누나의 품에 안긴 채 ‘나 아무 종놈하고나 합궁을 해서 아들을 임신할까봐’라는 말을 들었다. 남들이 생각하면 경을 칠 생각이라고 발끈했을 것이지만 권준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까지 할까. 또 어찌 생각하면 그럴듯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을 맞았다면 아들을 낳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종놈한테 아들을 얻은 뒤, 아무도 모르게 남편한테 얻은 아들이라고 속이면 그만이다. 속이는 행동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좀 나쁜 짓을 하더라도 평생 소박맞은 채로 울면서 사는 것보다는 나쁜 짓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권준식은 잠시 더 생각해 보다가 누나한테 ‘그거 괜찮은 방법이다.
누나 그렇게 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누나가 집안의 종놈인 돌쇠하고 ‘응응응’을 하는 장면을 상상되었고 그러자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다. 누나가 상스럽기 그지 없는 돌쇠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준식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누나, 내가 아들 만들어 주면 안될까?”
권준식으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끝에 내뱉은 말이지만 누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말이었다. 권소란도 동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끌어안고 있던 동생의 몸을 밀어 떨어뜨려 놓았다.
“뭐?”
권준식은 누나의 반응에 지레 놀라 자기가 큰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당황했다. 아니나 다를까.
“준식아!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야. 너랑 나는 남매잖아! 남매끼리는 합궁하는 거 아냐!”
권소란은 누가 들을까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하지만 힘을 주어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권준식은 누나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을 더듬으며 사과했다.
“누나, 미... 미안. 미안.”
권소란은 남동생이 헬쓱하게 질리며 다급하게 사과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너무 화를 냈다고 생각했다. 잠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다독이듯이 말했다.
“아이고 우리 준식이 아기를 어떻게 낳는 건지나 알아? 고추에 털이나 났니?”
권준식은 누나의 표정이 풀어지자 다소 안심하며, 또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응. 알아.”
권소란의 동생이 말에 흠짓했다. 그렇다 동생은 혼인까지 했다. 아직 어려보이지만 남녀지사의 일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소란은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나지막히 물어보았다.
“색시랑 합궁해봤어?”
권준식 역시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채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색시랑은 아직 합궁해 보ㅈ 않았던 것이다.
권소란은 잔뜩 긴장해서 동생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동생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권준식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음... 이건 말하면 알될 것 같은데...
권준식은 어렴풋이 남한테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왠지 누나를 속이는 것 같아 말하고 싶었다. 망설이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색시하고는 안해봤는데, 형수하고는 해봤어.”
권소란은 빙긋이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튀어나온 동생의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잠시동안 자기가 들은 말이 무슨말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동생의 말을 이해한 뒤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형수하고 합궁을 하다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인가?
“형... 형... 형수랑?”
“응.”
처음에는 동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기와 동생이 서로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아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권소란은 그말이 진짜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놀라서 진정하지도 못하고 말을 더듬으며 다시 물었다.
“어, 어, 어느 형수랑? 큰올케 아니면 작은올케?”
순간, 권소란의 머릿속에 작은올케의 여우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군! 작은올케군! 그 여시같은 작은올케가 독수공방을 참지 못하고 순진한 준식이를 꼬신 것이 분명해. 이 여시같은 년! 그런데 권준식의 대답의 뜻밖의 것이었다.
“둘 다.”
“둘 다?”
“응.”
권소란은 놀라서 다시 입이 벌어졌다. 약간 고지식하면서도 정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큰올케 최소연이 남동생과 그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해보려해도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작은 올케 박보희라면 충분히 그림이 그려졌지만. 한동안 혼란스러워서 권소란은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권준식은 누나가 한참동안 아무말없이 자기를 바라보고만 있자 슬슬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와의 일은 비밀을 지켜야하는 일인데 그만 누나한테 말해버린 듯 했다. 아무리 누나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이라 해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래서 울상이 되었다.
권소란은 문득 남동생의 표정이 울상이 되어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소란은 남동생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지 금방 눈치챘다. 그래서 권준식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로 다급히 말을 꺼내 안심시켰다.
“준식아. 알았어. 나 그거 비밀 지킬께.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 걱정하지마 응?”
권준식은 그제야 안심이 되어 얼굴이 활짝 펴졌다. 역시 누나는 믿어도 좋은 것이다.
두 사람은 그 뒤에도 한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주고 받았다.
서로의 고민을 충분히 얘기해서 속이 후련해 진 후에 권준식은 누나의 방을 나왔다.
권준식이 방을 나간 후 권소란은 묵묵히 동생과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준식이가 올케들하고 날마다 합궁을 하고 있다고? 어쩜 그럴수가...’
생각해보니 동생이 형수하고 합궁을 하고 있는 터였기에 권소란에게 ‘내가 아기를 만들어 줄까?’하고 말할 수 있었을 듯 싶었다. 이미 형수들하고 합궁을 하고 있었기에 도덕관념이 무뎌져서 그런 과감한 발상을 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그것은 누나를 위해서 생각해낸 발상이긴 하지만...
권소란은 생각하다가 동생의 발상이 귀엽다고 느껴져 피식 웃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아무 종놈하고나 배를 맟춰서라도 아들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 나도 준식이 보다 나을 건 없지.’
권소란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머리 위로 이불을 둘러쓰고는 드러누웠다. 동생과 얘기를 할 때는 잠시 울적한 심사가 가라앉고 즐거움까지 느꼈지만 다시금 혼자가 되고 보니 소박맞은 자기의 신세가 마음에 사무치며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불 속 어둠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욱 더 어두운 곳 속에 숨고 싶다는 듯이 이불을 끌어 당기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점차 그 예상치 못한 생각은 점차 그녀의 머릿속에서 확대되어 드디어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그 예상치 못한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 예상치 못한 생각은 ‘준식이하고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들까?’하는 생각이었다.
흔히들 상피붙었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비도덕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몰래한다면, 또 그 대상이 준식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남편인 김을동한테 억지로 강간당하듯이 합궁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동생인 준식이와 합궁을 하는 것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무 종놈하고 배를 맟추느니 차라리 준식이와...’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가로 질렀다. 정신차리자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야! 라고 생각했다
가 다시금 ‘그래도!’하고 생각했다가 다시금 고개를 홱홱 흔들며 자기 뺨을 때리고 정신을 차리려고 하고 하기를 반복했다.
최후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만약 준식이하고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든다면 하루라도 빨리 합궁을 해서 아기를 만들어야해, 최소한 아기를 낳는 날이 한달 정도 늦는 범위에서야 시댁에 할 말이 있지.’
즉,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처럼 보통보다 빨리 태어나는 아기가 있듯이, 반대로 보통보다 약간 늦게 태어나는 아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준식이와 합궁을 해서 아기를 임신한다고 해도 너무 늦게 임신하면 시댁에 가서 남편 김을동의 아기라고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b0屛け 전날밤에 김을동이 강간하듯이 권소란의 몸을 취했으니, 빨리 임신하면 시댁 식구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권소란은 어느덧 자신이 치밀하게 계산까지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스스로를 질책하며 다시 고개를 홱홱 흔들어 잡념을 쫓으려 했다.
권준식은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형수들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색시하고 자야겠다. 색시가 웬지 슬퍼하는 것 같아.’
내심 작은 결심을 하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자기 방으로 향했다.
막 도망치듯이 자기 방문 앞까지 도착했는데 저편에서 작은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준식아.”
권준식이 돌아보니 누나 권소란이 손짓으로 오라고 하고 있었다.
권준식이 반가움에 싱긋 웃으며 누나한테 다가갔다. 그러자 누나도 생긋 웃으며 권준식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며 동생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권준식은 누나가 이끄는대로 따라가 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가 방문을 닫고는 둘이 서로 마주 앉았다.
두사람은 마주 앉은 채로 한참동안 서로 말을 안했다. 단지 권준식이 싱긋 웃으면 권소란도 생긋 웃고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권준식은 누나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불렀을 것이므로 누나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고, 권소란은 물론 할 말이 있었지만 쉽게 꺼낼 수가 없어서 그냥 동생의 웃음에 마주 웃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권소란은 동생의 웃음을 보고 마음 속에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